나, 이것밖에 없어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석훈은 예복을 벗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병실 복도에 들어설 때, 이미 다리가 떨렸다.
병실에 눕자, 환한 웃음뒤에 가려졌던 고통이 터져 나왔다.
숨은 가빠졌고, 들숨 마다 끊는 가래소리가 목구멍을 때렸다.
호흡은 목 끝에서 끊겼고, 날숨은 쏟아지듯 거칠었다.
남편의 헐떡이는 숨소리.
그 모든 게 ‘다음 날’을 약속하지 않는 듯 들렸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의 양치질을 돕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을 때
같은 병실의 간병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 참아도 가래소리는 비위가 상해서 못 참겠어.”
그 말은 병실 안 공기를 자르며 퍼져 나갔다.
화가 난 경이는 입을 열려했지만 끝내 꿀꺽 삼켰다.
그녀의 말이 맞기도 했을 터,
또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간병인이 부럽기도 했다.
병실 안에서는 돈을 받는 쪽이 주는 쪽보다 힘이 세다.
그 무례한 말 앞에서, 경이와 석훈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점차 깊어져 무거운 그림자가 되었다.
인서 결혼식을 마친 뒤, 남편은 열흘 동안 병원에 더 머물렀다.
배액관을 달고 퇴원은 했지만, 곧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그의 몸은 풍선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붓기 시작했다.
매주 맞아야 하는 항암 주사를 위해 쇄골 아래에 케모포트를 심었다.
석훈은 주기적으로 약을 맞으면서도 복직했다.
“ 여보 제발 일은 그만 쉬자” 경이가 붙잡았다.
“두 발로 걷고 숨 쉴 수 있는 것만으로 축복이야 괜찮아”
잦은 기침을 하면서도 석훈은 출근길을 서둘렀다.
임종 두 달 전까지, 그는 출근을 멈추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가족을 끝까지 지키려는 자존심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조차 행복이었다.
경이 부부는 석훈의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5월의 따사로운 햇빛은 경이 부부를 따뜻하게 안내하는 듯했다.
“내가 운전할게요” 경이는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석 옆에 서서 석훈은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해줄 수 있을 때 해야지” 중얼거리듯 말했다.
해줄 수 있을 때...
그날, 석훈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그 어디에서 이런 에너지가 남아 운전을 하는지 믿기지 않았다.
차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석훈이 진지하게, 사랑 고백을 하듯 말했다.
경이는 정적 속에서 그의 말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입안에서 단어를 한참 골랐다.
“나는 하객들 앞에서 약속한 성혼선언문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야”
남편은 피식 웃었고 짧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막내시누 부부는 석훈과 경이를 위해 정갈한 음식점을 예약해 두었다.
평소 맛집 투어를 즐기던 그였지만, 이날은 음식 앞에서도 수저를 들지 못했다.
서너 수저 뜬 것마저도 끝내 숙소에 돌아와 모두 토했다.
숙소는 소파와 침대가 없는, 한적한 한옥 휴양림이었다.
생명이 빠져나간 나무처럼 바싹 마른 석훈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경이를 바라보았다.
경이는 서둘러 장롱에서 이불과 요를 꺼내 겹겹이 깔아 앉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도 잠시뿐이었다.
새벽 해가 떠오를 때까지 석훈은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그의 헐떡이는 숨, 가래 섞인 기침 소리, 몸이 흔들리는 느낌...
경이는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밤을 새웠다.
형제들도 모두 뜬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여행은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형제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
그는 아버지처럼 따랐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형과 가장 늦게 작별인사를 했다.
멀찍이서 그의 형 석철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 이거밖에 없어.”
그 안에는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이 석훈의 손에 들어갔다.
그때 그 순간 석철의 말투와 몸짓이 경이의 머릿속에 또렷이 박혔다.
그는 침묵에 길든 남자였다.
그날의 자괴감은 지금도 경이의 눈앞을 흐리게 한다.
더 적은 돈을 받고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맙고 미안할 때가 있다.
이십만 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돈을 받고, 마치 구걸이라도 한 듯 경이는 마음이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경이는 뻔뻔스러운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뭘 그렇게 바랐던 걸까. 돈도 받고, 말도 들으려 했던 걸까.”
돈을 받아놓고도 허기진 마음이었다.
어쩌면 경이는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건넨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말,
눈동자에 비친, “나는 너를 기억해”라는 그 조용한 기척,
아니면 모두가 끌어안고 한 목소리로 통곡이라도 했더라면
석훈과 자신의 마음에 돌처럼 쌓인 감정이 녹았을까.
그것조차 경이의 욕심이었을까.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지친 몸을 소파에 눕히듯 쓰러뜨렸다.
손에는 형제들이 건넨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인후가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다가왔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눈을 마주치고 조용히 물었다.
“아빠, 형이 준 돈이라... 고마웠어?”
“응.”
석훈은 머리를 천천히 끄덕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큰아빠 드리고 오지.., 왜 받아왔어.”
숨죽이며 울먹이는 인후의 목소리가 그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경이는 그저 인후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소파에 누운 남편 옆에서 경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인후는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엔 오로지 기침 소리만이 한 겹씩 번졌다.
봉투는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경이는 그 돈이 그저 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이 담겨 있었고, 평생 닿지 못한 형제의 거리,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진 부끄러움.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기회의 부재.
“내가 뭘 그렇게 바랐던 걸까.”
그러면서도 또다시 자책했다.
왜, 애초에 기대했을까.
왜, 아직도 마음이 흔들릴까.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모양을 한 마음이라는 것을 경이는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남편의 건강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기침은 더 깊어졌고, 식사는 갈수록 줄었다.
잠도 자지 못하고, 말수는 거의 사라졌다.
산소발생기 없이는 호흡조차 버거웠다.
어느 날, 해령 형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경이는 받아서는 안 될 전화를, 망설임 없이 받았다.
특별할 것 없는 안부를 주고받던 중
“형님 이렇게 되니 좋으세요? 결국 이러라고 저를 그렇게 씹으신 건가요?”
그 소리가, 경이 입에서 부지중에 튀어나왔다.
마치 혀가 저 혼자 소리를 낸 것 같았다.
시댁이라는 도마 위, 아니 수레바퀴 아래 눌려 있던 경이의 혀가 멋대로 지껄여 댔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경이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시댁 식구에게,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인 것은 처음이었다.
곧바로 사과했지만, 남편이 떠난 지금 생각해 본다.
그 말마저 하지 않았다면 더 후회했을 거라고.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 같았다.
경이를 엮은 건 인연이 아니라
주희와의 악연과 그리고 그를 향한 증오가 만들어낸 길고 어긋난 시간 들이었다.
석훈은 알았을 것이다.
경이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그의 가족 안에 들어섰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그건 단지 운도, 사랑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책임 회피가 만든 연쇄였고,
그 맨 끝에 놓인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말하면 경이가 등을 돌릴까 봐 무서웠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침묵했고, 그녀는… 그 침묵을 먹고살았다.
이 남자와 인연이 되어 아이를 낳고 삼십여 년을 살아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한 번도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도.
고맙다고도.
함께여서 든든했다고도.
그의 생은 끝내 침묵으로만 곁에 있었다.
그 침묵을 묵묵히 짊어진 또 한 사람이 경이였다.
석훈은, 아버지에게 약속된 유산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구두상으로 그에게 주어진 그 땅은 이미 그가 군 복무 중이던 시절
법적으로 형 석철의 소유로 넘어가 있었다.
그때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세상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젊은 날이었다.
그는 형처럼 맞설 여유도, 가족 안에서 목소리를 낼 힘도 없었다.
구두로 약속된 동생 몫은, 언제부턴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석훈 역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언제나처럼 조용히 물러섰다.
경이는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노동의 대가에는 집요하던 사람이,
석훈에게 ‘권리’라는 단어가 편하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조용히 물러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이의 기억은 그날로 돌아갔다.
첫 번째 보증이 끝난 뒤, 두 번째 보증을 부탁받던 날이었다.
석훈이 잠시 주저하자
“내가 너보다 돈 더 많아! 이 새끼야”
모욕스러운 형의 욕설 속에서도 그는 인감증명서를 떼어 석철의 회사 W사로 향했다.
그날 그는 아무 조건 없이 움직였다.
마치 자신을 서울로 안내한 형에게 빚을 갚는 사람처럼.
그때 경이는, 남편이 말없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보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석철은 가족들 앞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보증을 누구한테 부탁했더니 안 서주더라고”
그 말이 나올 때마다, 경이는 온몸이 굳었다.
은혜를 모른다던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굳어졌다.
진실은 점점 미끄러졌고, 그 자리를 거짓이 채웠다.
경이는 그 모든 말을 삼켰다.
그저 증거가 된 은행에서 보낸 서류 뭉치를 서랍 깊숙이 아직까지 넣어두었을 뿐이었다.
석훈은 경이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져주는 사람이었다.
다툼을 피했고, 무엇이든 한 걸음 물러서며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형이니까. 결혼했으니까. 가족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오해는 풀리고, 진실은 언젠가 저절로 밝혀질 거라고 믿었다.
늘 그렇게, 자신을 지우며 상황을 받아들이려 했다.
남편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다툼을 피했고, 물러섬으로써 관계를 지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침묵 위에 각자의 이야기를 얹었다.
경이는 안다.
그가 끝내 말하지 않았기에,
이제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그 침묵이 남긴 것이 결국 서로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빛바랜 그 증거의 서류를 서랍에서 꺼낼 것이다.
고발이 아니라, 남편의 진심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 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