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멈췄다

by 지온

중학교 입학식 날,
엄마는 그날을 식당 쉬는 날로 바꿔 같이 가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혼자 가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내린 학교는 새 건물 냄새가 났다.
운동장은 넓었고, 건물의 페인트칠은

벗겨진 곳 하나 없이 선명하게 칠해져 있었다.
나는 그 학교의 첫 입학생이었다.

입학식 날이라 아이들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나와 같은 6학년이었을 텐데,
봄방학을 막 지난 모습은 분명 달라 보였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밝은 갈색 단발머리,
연핑크색 티셔츠에는 알 수 없는 영어가 크게 적혀 있었다.
넓은 통 청바지는 바닥에 닿을 듯 길었고,
하얀 나이키 운동화는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한 번도 신어본 적 없었지만, 비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텔레비전 속 사람처럼 보였다.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안녕. 나는 보람이야. 김보람. 넌 이름이 뭐야?”

잠깐 멈췄다.

“나…”

내 이름을 말하는 데도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보람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삐삐 번호 뭐야?”

“없는데…”

그 아이는 웃으며 종이에 번호를 적어 건넸다.
“이거 내 번호야.”

종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보람이는 이미 다른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다음 날이었다.

교복을 입고 다시 학교에 갔다.

교실 문을 열자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이들은 이미 몇 명씩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뒤쪽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모서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수업이 시작됐다.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가 얇게 퍼졌다.
교실에 분필가루 냄새가 내려앉았다.

“이거 아는 사람?”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손을 들어 올렸다.

책상에서 떨어진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어깨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잠깐 그대로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 걸린 것처럼 멈춰 있었다.

다시 손을 내렸다.
손바닥이 책상에 닿았다.
가볍게 소리가 났다.

다른 아이가 지목되었다.
정답을 말했다.

교실에 짧은 웃음이 퍼졌다.

입학식 날
종이를 건네주던 아이가 있었고,

교실에는
나를 보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는데,
나는 끝내 나를 넘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도
한동안 손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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