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명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가난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이, 아주 오래전부터
내 삶의 여기저기에 조용히 쌓이고 있던 감각이었다.
처음 그 감각을 느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날.
아파트 현관을 지나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방문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밝은 전등 아래
하얀 타일이 반짝이고 있었다.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 앞에서
숨을 참고 들어가야 했던
우리 집 공동 푸세식 화장실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처음 알았다.
집이 이렇게 밝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저 낯선 풍경 하나가 내 앞에 놓였을 뿐이었다.
친구들의 크레파스는 길고 가지런했다.
종이 상자 안에서 색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내 크레파스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닳아 있었다.
그래서 종이를 더 세게 문질러 색을 냈다.
소매가 조금씩 해진 옷과 몽땅 크레파스.
그것이 내가 사는 세계의 크기였다.
어느 날 문득 알았다.
우리 집은 가난한 집이었다.
아빠는 택시 일을 쉬는 날이면
화물차를 몰고 고물을 주우러 다녔다.
가끔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아빠는 나를 태우고 교외로 나가곤 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아빠는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벼밭 앞에서도,
가을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들판에서도
나를 세워 두고 셔터를 눌렀다.
“거기 서 봐.”
허리에 두 손을 얹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발뒤꿈치를 들어 발끝만 땅에 톡 대는 포즈.
아빠의 카메라 앞에서 나는 늘 자신감이 넘쳤다.
들판과 하늘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아이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학교 교문 앞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어느 날
아빠가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을 때였다.
교문을 나오다 잠깐 멈췄다.
화물차 옆에 서 있는 아빠가 보였다.
기름때가 묻은 낡은 작업복.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누가 볼까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아빠가 웃으며 물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응. 그냥.”
그날 처음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가 놀리면 더 크게 받아치던 목소리가
그날 이후로 조금씩 작아졌다.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왜 나는 준비물을 자주 챙겨 가지 못할까.
이건 내 잘못이 아닌데.
그 생각이 밤마다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배정 발표가 있었다.
6학년 전교생 중 일부가
새로 생긴 중학교에 배정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거기 어디야?”
“버스 타고 가야 한대.”
“멀다던데?”
우리 반에서는 단 한 명이었다.
내 이름이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전교생 중 딱 열 명.
우리 반에서는 단 한 명.
그 한 명이 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내 낡은 옷을 본 아이도,
몽땅 크레파스를 본 아이도 없다.
아빠의 낡은 화물차도
기름때 묻은 작업복도
아무도 모른다.
혼자 텅 빈 집에서
종이 인형을 오려 놀던 날들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먼 곳으로 떠나는 상상.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 말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그 낯선 학교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몰랐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