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이 있습니까?
봄이 되면 학교에서는 늘 회색빛 갱지를 나누어 주었다.
표면이 거칠고 시큼한 잉크 냄새가 나는 종이.
가정환경조사서였다.
담임 선생님은 빈칸을 하나도 빠짐없이 채워오라고 했다.
종이 위에는 내가 사는 세계를 묻는 단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주거 형태
부모 학력
부모 직업
자가용 유무
나는 연필을 쥐고 거친 갱지 위에서부터 아래로 채워 내려갔다.
첫 번째 문항, 주거 형태.
세 번째 칸 월세에 연필심을 꾹 눌러 V자를 그렸다.
부모님 학력은 두 분 모두 초등학교 졸업.
직업은 아빠 택시 기사, 엄마 식당 종업원.
마지막 문항, 자가용이 있습니까.
나는 동그라미 안에 표시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가방 깊숙이 밀어 넣고 지퍼를 닫았다.
다음 날, 선생님은 1번 문항부터 큰 소리로 불렀다.
“자가인 사람 손.”
여러 개의 손이 올라갔다.
전학 온,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전세.”
조금 더 올라갔다.
“월세.”
나는 손을 들었다.
예전보다 손을 든 아이가 적었다.
예전에도 늘 들던 손이었는데,
그날따라 괜히 무거웠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월세가 뭐야?
전세는?
자가는?
그제야 비로소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부모님 직업을 묻는 차례.
의사, 경찰, 선생님.
장래 희망 칸에나 적어내던 단어들도 교실 안을 떠다녔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와 선생님 엄마를 둔 윤지혜는
자가에 손을 들었다.
마지막 문항.
“자가용 있는 사람.”
나는 손을 들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너네 집에 진짜 차 있어?"
"응. 있어."
“무슨 차?”
“화물차.”
잠깐 정적이 흐른 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그게 자가용이냐?”
왜 웃는지 잘 몰랐다.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렸다.
우리 집에는 낡은 소형 화물차 한 대가 있었다.
짐칸에는 늘 흙먼지와 녹슨 쇳내가 배어 있었다.
아빠는 택시 쉬는 날이면 화물차를 몰고 나가 고물을 주웠다.
철거 현장과 시골 골목을 돌며 고철과 가전을 실어 날랐다.
아빠와 엄마의 쉬는 날이 겹치면
우리는 그 차를 타고 가까운 강화도 바다로 향했다.
아빠가 화물칸 차가운 쇳바닥 위에 두꺼운 텐트를 치면
그곳이 우리의 자리가 되었다.
앞은 두 자리뿐이라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나는 화물칸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해 낡은 담요를 여러 겹 깔고
건전지가 든 카세트를 한가운데 놓았다.
차가 출발하면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진동이 담요를 뚫고 올라왔다.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짐칸이 요동쳤다.
우리는 허리를 숙인 채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버텼다.
중심을 잃고 뒹굴면 가차 없이 등짝으로 ‘인디언 밥’ 세례가 쏟아졌다.
카세트에서는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이 엔진 소리보다 크게 울렸다.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다에 도착하면
아빠는 낚싯대를 펴고
엄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올렸다.
양은 냄비에서 끓는 매운 라면 국물에
차갑게 굳은 도시락 밥을 덩어리째 넣고 말았다.
냄비는 순식간에 숟가락에 긁혀 바닥을 드러냈다.
식은 찐 감자를 설탕에 찍어 삼키며
모자란 허기를 마저 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붉게 물든 노을이 텐트 안에 스며들었다.
연필심을 꾹 눌러 그렸던
자가용 칸의 동그라미.
그 작은 흑연의 궤도 안에서
가족의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
나는 덜컹거리는 짐칸 바닥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