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거친 빈손

봉지 하나, 손 하나

by 지온

내 기억 속 엄마는
누군가에게 따지러 학교로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꽃무늬 포장지로 싼 김 한 톳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였던 날.
교탁 앞에서 변명 한 줄 하지 못해
귀를 잡혀 피가 났던 날에도,
복도 끝에 엄마의 그림자는 없었다.


대신 엄마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내가 원하던 대로 머리를 짧게 잘라주고,
찢어진 귓바퀴에 붉은 약을 발랐다.
손끝의 거친 온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늦은 밤,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방바닥에 등이 닿자마자 눈을 감았다.
음식 냄새가 밴 머리카락이
하얀 베개 위로 무겁게 번졌다.


나는 그 곁에 앉아
엄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서랍에서 파란 아이섀도를 꺼내
가만히 감긴 엄마의 눈두덩이에 색을 올렸다.


엄마의 눈은 컸다.
내 눈과 달리 쌍꺼풀이 깊었다.
한 손으로 얇은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면
하얀 눈동자가 반쯤 드러나며
속눈썹이 딸려 올라왔다.
그 위로 마스카라를 덧칠하고,
입술에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볼에 문질러 번지게 했다.


"엄마. 봐봐. 예쁘지?"
엄지와 검지로 엄마의 눈을 벌리면
쌍꺼풀이 여러 겹으로 쌓이며
엄마의 큰 눈이 천천히 떠졌다.


"이쁘네."
쌕쌕거리던 편안한 숨소리를 멈추게 했음에도,
기묘하게 어긋난 제 얼굴을 하고서도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엄마가 식당을 쉬는 평일의 단 하루,
우리는 들판으로 나갔다.
골목을 빠져나가 이십 분쯤 걸으면
탁 트인 밭이 펼쳐졌다.


엄마는 땅에 웅크리고 앉아
쑥과 냉이를 캤다.


나는 클로버 꽃으로 왕관을 엮어 쓰고
분꽃 씨를 살짝 돌려 귀에 걸었다.
이내 시시해지면,
곧장 들판을 향해 달렸다.

누가 문을 열까 쇠고리를 걸어 잠그던 아이도,
교탁 앞에서 입을 꾹 다물던 아이도
그곳에는 없었다.


발끝에 흙먼지가 일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와 풀잎들이 한꺼번에 눕는 방향을 따라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음정도 박자도 없는 노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들판은 내 노래가 틀렸다고 다그치지 않았다.


한참 뒤,
엄마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흙 묻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햇빛을 가리듯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며 웃었다.


"이야, 우리 딸 잘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엄마는 다시 땅으로 시선을 내리고,
조용히 칼끝을 움직였다.


검정 비닐봉지가 나물로 불룩해지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엄마의 한 손은 봉지를 쥐고,
다른 손은 비어 있었다.
나는 그 곁을 따라 걸었다.


발끝이 흙을 밟고,
걸음을 뗄 때마다
봉지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내 손등을 툭툭 스치는
엄마의 거친 빈손.


봉지 하나, 손 하나.
내일 다시 차가운 교실 문을 열기엔,
내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전 06화호랑이 선생님과 꽃무늬 김 한 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