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리를 걸어 잠그고 속삭이던 종이인형극
미싱이 멈춘 거실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낡은 미싱,
벽지에 남은 엄마의 등 기대던 자국,
무거운 쇠다리에 눌려 푹 들어간 장판.
겉모습은 같은 거실이었지만,
공간의 성질은 달라져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나는 ‘오후반’이었다.
학생 수가 넘쳐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수용하던 시절.
오전반인 언니와 오빠가 등교하면,
그 시차는 나를 빈집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추크, 추크, 추크...”
새벽 어스름 속,
부엌에서 금속이 숨을 고르는 듯한 리듬이 들려오면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치익―”
증기 배출구에서 긴 김이 빠져나오고
갓 지은 밥 냄새가 거실을 채우고 나면,
엄마는 신발을 신었다.
지금 현관 앞에 서지 않으면
밤늦게까지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엄마의 등 뒤에 섰다.
엄마가 떠난 부엌에는
곰솥 가득 따뜻한 국이 있었다.
묵은지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 김치 콩나물국.
솥뚜껑을 열면
매콤한 멸치 육수 향이 훅 치고 올라왔다.
그 향은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엄마의 흔적이자, 약속이었다.
언니와 오빠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면
나는 대문을 반쯤 열어 두고,
두 사람의 뒷모습이 저 골목길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서둘러 문을 닫고 쇠고리를 걸었다.
철컥.
문에 귀를 대고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나의 긴 아침이 시작되었다.
TV는 아침이 지나면 멈췄다.
화면에 남은 건
“삐―” 하는 이명 같은 소리와 함께
무지개색 컬러바(Color bar)의 정적뿐.
그 침묵 속에서 내가 꺼낸 것은
달력 뒷장과 몽땅 크레파스였다.
하얀 공백을 선들로 채우다 지루해지면
종이인형으로 바꿨다.
어깨에 달린 종이 날개를 접어
옷을 입히는 평면의 인형.
갖고 싶었던 바비 인형은 없었지만,
양손에 쥔 인형에 수십 번 옷을 갈아입히며
나는 혼자서 여러 사람이 되었다.
“공주님, 어디 가세요?”
“(쉿) 무도회장에 간다니까.”
야간 택시 운행을 마친 아빠가
안방에서 잠들어 있을 때면,
그 소리는 더 작아졌다.
거실에는
종이끼리 부딪치는 바스락 소리와
나의 낮은 속삭임만 감돌았다.
배가 고파지면
엄마가 해놓은 새 밥을
국에 말아 먹었다.
후루룩.
밥알과 국물이 목구멍을 지나며
온기가 조금씩 몸으로 스며왔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기 전,
나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거실,
닫힌 안방 문,
식은 국 냄비.
쇠고리를 걸어 잠그고
속삭이며 혼자 놀던
오후반 아이의 긴 아침은
손끝에 차가운 감촉을 남긴 채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