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의 작은 장갑 공장
택시 운전대를 잡던 아버지의
고단한 오후 근무조가 있는 날이면,
거실은 숨소리조차 죽여야 하는 정적에 잠겼다.
그 고요 속, 허락된 소음은 단 하나.
엄마의 낡은 미싱 소리였다.
언니와 오빠가 학교로 간 뒤,
비로소 그 소리가 시작되었다.
“드르륵, 드르륵.”
일곱 살의 나는
그 규칙적인 리듬 옆에 엎드려 달력 뒷장을 펼쳤다.
엄마가 페달을 밟아 쉴 새 없이 원단을 누르는 동안
나는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그림을 그렸다.
오전의 거실엔 미싱 소리와 크레파스 굴러가는 소리뿐이었다.
오후가 되고, 언니와 오빠가 돌아오면 공기는 달라졌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가차 없는 ‘장갑 공장’으로 변했다.
준비물은 쪽가위와 쇠젓가락.
드르륵, 하고 장갑이 내려오면
한 명은 실밥을 끊고,
나머지는 쇠젓가락으로 구멍을 쑤셔 뒤집었다.
사각사각, 틱틱.
아버지가 깰까 봐 입은 다문 채
손만 바쁘게 움직였다.
쪽가위를 오래 쥔 날이면
엄지와 검지 사이가 부르트고 물집이 잡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힐끗 쳐다본 엄마의 손.
손톱과 마디 사이사이,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때가 문신처럼 박혀 있었다.
저녁이 되어 산더미 같던 일감이 바닥을 드러내야
엄마는 허리를 폈다.
미싱 기름 냄새 위로 밥 짓는 냄새가 덮이던 저녁,
비로소 우리의 노동은 끝이 났다.
고요 속 미싱 소리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가 식당 일을 나가면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어린 나를 두고 집을 비울 수 없었던 엄마가,
집에서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 치열했던 소음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서로를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