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봉지에 담긴 엄마의 최선
국민학교 2학년,
내 통지표의 ‘행동 발달 사항’은 단 한 줄이었다.
“친구들과 싸움이 잦고, 잘 울며, 이기적임.”
그로부터 딱 1년 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같은 아이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창의적이고 심성이 고움. 예의가 바르고 책임감이 강함.”
1년 사이,
나는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아니었다.
나는 똑같은 아이였다.
달라진 건 담임 선생님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뿐이었다.
2학년 담임의 이름 끝에는 ‘범’ 자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를 호랑이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몽둥이를 들지도 않았다.
대신 손이 먼저 나왔다.
아이들과 다툼이 있는 날이면
왜인지 내 머리카락만 잡혔다.
그 손길이 죽기보다 싫어서
나는 엄마에게 졸라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버렸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잡히지 않으려는,
아홉 살의 처절한 방어였다.
짧아진 머리로 등교한 날,
그는 픽 웃더니 이번엔 내 귀를 잡았다.
거칠게 잡아당기는 손길에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귀 뒤에서 뜨끈한 것이 흘러내려
목덜미를 적셨다.
그것은 피였다.
싸움의 이유는 늘 같았다.
“야, 너한테서 김치 냄새나.”
“거지냐? 준비물 또 안 가져왔어?”
“너는 맨날 이 옷만 입냐?”
남자아이들의 놀림은 집요했다.
나는 지지 않았다.
“김치가 뭐! 니들이 보태준 거 있어?”
“이 옷,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거든!”
악을 쓰고 덤벼들면 결국 몸싸움이 났다.
그리고 그 싸움은
나만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가면서 끝이 났다.
“계집애가 독하게 누굴 때려?”
설명할 기회는 없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귀가 다시 잡혔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나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억울함만 더해졌다.
5월, 스승의 날이었다.
그날 아침, 엄마는 분주했다.
검정 비닐봉지가 아닌,
아껴두었던 깨끗한 하얀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엄마가 시장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온
김 한 톳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촌스러운 꽃무늬 포장지로
김을 정성스럽게 싸서
내 손에 들려주었다.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드려.”
교탁 위는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로 북적였다.
깔끔한 쇼핑백,
고급스러운 리본이 묶인 상자들.
교실 안에는 낯설지만 좋은 향기가 진동했다.
나는 하얀 봉지에서
꽃무늬 포장지로 싼 네모난 덩어리를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건 뭐니?”
“김이요.”
선생님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내 손을 툭 밀어냈다.
“이건 너 먹어.”
내 쪽으로 미끄러진 김 뭉치.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준 그 김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에 들린 김 봉지를 흔들며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왜 하필 김이야.
3학년이 되고는
아무도 내 귀를 잡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놀렸고,
나는 여전히 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나를 바라보는 쪽이었다.
내 손에 남아 있던 하얀 비닐봉지 속에 든 것이
김이었는지,
그날의 침묵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