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그림자
씻는 일은 언제나 작은 고행이었다.
욕실이라 부르기 민망한,
천장의 반이 뻥 뚫려 있던 공간이 우리 집의 ‘목욕탕’이었다.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그대로 맞으며 씻어야 했던
강제 노천탕 같은 곳.
한겨울 칼바람이 스며들 때면
살갗을 넘어 뼛속까지 시린 것만 같았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커다란 들통에 물을 가득 받아
곤로 위에서 한참을 데워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아껴가며 씻어야 했으니,
목욕이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보다 추위가 더 두려웠던 시절이었다.
그 낡은 집 곳곳에는
늘 ‘친구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더듬이를 길게 뻗은 녀석들이 사방으로 펄쩍 튀어 오르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우와, 귀뚜라미다!”
나는 그것이 가을밤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귀뚜라미인 줄 알았다.
삭막한 집에 찾아온 자연의 선물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습하고 썩은 곳을 좋아하는
‘곱등이’였다는 사실을.
내 추억 속에서 반짝이던 작은 낭만은
사실, 가난이 만들어낸 착시였다.
그 녀석은 노래하는 곤충이 아니었다.
내 유년의 눅눅한 어둠이 키워낸,
그저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