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82년생의 낡은 필름

40년 만에 세상에 내미는 첫 번째 명함

by 지온

세상은 ‘82년생 김지영’을 말하며
보편적인 여성의 삶을 논했지만,
내게 1982년은 조금 다른 냄새로 남아 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
낡은 재봉틀의 비릿한 기름 냄새,
그리고 푸세식 화장실에서 치솟던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


​내 유년의 풍경은 늘 그런 냄새들로 엮여 있었다.


​지금 나는
서울의 번듯한 30평대 아파트 거실에 서 있지만,
거울 속에는 가끔
바가지 머리에 헐렁한 옷을 입은 꼬마가
불쑥 나타나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제 따뜻한 물은 잘 나와?
바퀴벌레는 없어?”


지독히 가난했지만,
이상하게도 전부 비참하지만은 않았던
한 소녀의 성장 기록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남편에게조차 꺼내지 못했다.


​행여나 그 시절의 냄새가
지금의 평온한 삶까지 번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야 알겠다.
내가 숨겨온 것은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가난보다 질기게 나를 붙들어 준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 글은 나의 가장 오래된 비밀이자,
40년 만에 세상에 내미는
나의 첫 번째 명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