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우준이 엄마
세계를 누비며, 화려한 무대에서, 청중들의 갈채를 받는 성악가. 10년 동안 성악을 공부했던 음악대학 학생이었다. 세계적인 성악가 “홍혜경“님과 세종문화회관에서 함께 무대에 서는 영광도 가졌다. 수업이 끝나고, 밤 늦게까지 연습실에 남아 악보를 외우고 교수님과 공부할 때 안되었던 부분을 연습하면서 미래를 꿈꿨었다.
대학원 재학 중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이루고 싶어 유학을 준비했다. 2005년 겨울, 유학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 기점으로 나의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외국에 나가 혼자 생활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유학생활의 부푼 마음만 안고 한국을 떠났다.한국을 떠나온 아쉬운 마음보다 독립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더 설레었다.하지만 외국에서 나가서 가장 큰 이질감은 일상생활 속 에서 나에게 주어진 무한한 선택의 자유와 더불어 책임의 무게가 나를 점점 압박해왔다.또한 자유로운 만큼 외로움도 컸다.외국에서 3개월만 공부하면 영어가 금방 늘어 학교 입학이 바로 가능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떠났지만 영어가 쉽게 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지에 있다 보니 혼자서 밥 차려 먹기가 싫어 굶는 날이 마저 늘어났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을 잘못 구해 자는 내내 한기가 들어왔다.밤새 오돌오돌 떨면서 잠을 청했고 몸과 얼굴에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왔다.얼굴이 따끔따끔 거려 공부도 노래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한국으로 돌아갈까 말까를 한두 달 고민하는 사이 몸은 더 안 좋아졌다.십 수 년을 바라보던 목표는 사라졌다.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시기는 없었던 거 같다. 나에 대한 불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위장 질환, 피부 트러블, 약한 체력을 가진 나만 남아 있었다. 얼굴의 심한 두드러기 때문에 대인기피증도 생겼고 우울한 마음이 지속된 나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한국으로 1년만에 들어왔다.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 그토록 하고 싶었던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십 수년을 바라보던 목표는 사라졌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힘들었던 시기에 옆에서 나를 지켜줄 남편을 만났다.
나의 꿈은 현모양처
사랑하는 아이들이 우리 가정에 선물을 받았고 약해진 체력에 나의 우선순위는 남편과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처음 되어 보는 일이었다.”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생각에 두려운 마음과 걱정이 더 앞섰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많은 육아책과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했었다. 훌륭한 아이로 키우리라 다짐하며 책을 읽었지만 어려움만 더해가는 날이 많았다. 모든 것을 아이들에 맞추며 살았다. 아이가 떼쓰며 우는 날에는 죄책감 좌절감 나는 못난 엄마인가? 라는 생각에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육아 책을 읽다 보면 아이의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존감? 그게 뭐 지? 그토록 중요하면 우리 아이들도 꼭 있어야 하지“라며 자존감을 찾아 헤맨 날이 있었다.”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라“라는 구절을 읽고는 아이들과 눈만 마주칠 때마다 칭찬을 했다.”많은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라는 글귀에 아이들에게 규율을 정해 놓고 엄하게 대했더니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 그럼 아이의 자존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민하고 걱정하며 자존감을 찾아 헤맸던 초보 엄마 시절도 있었다.10년간을 오직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았다.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보석 같은 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생각해보면 값진 시간들이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는 아이들은 내가 원하는 이상으로 잘 자라 주었다. 아이를 위해 노력했던 나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내 존재를 인정받고 엄마가 아닌 허지영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인 삶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볼까 하다 가도 무조건 “할 수 없어”라는 마음이 먼저 생각났다. 약해진 체력에 하고 싶었던 일이나 꿈들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면 좌절된 꿈이 머릿속에 교차되었다. 마음이 힘들어 들을 때 마다 라디오를 껐다. 외국에서 연주하는 활동하는 동기들의 SNS를 본 날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해 잠을 설쳤다. 노래연습이라도 하는 날이면 몇 날 며칠을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재운 밤, 혼자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 내가 원했던 삶인가?”라며 혼자 읊조리며 내가 주인공인 삶은 앞으로는 없겠다는 생각에 먹먹해진 밤을 하루하루 보냈었다. 2016년 작은아이가 6살정도 되었을 때 레슨을 받던 교수님이 청주시립합창단에 비상임 단원 자리를 모집한다고 오디션을 추천해 주셨다.
나의 파트는 메조소프라노인데, 메조소프라노 인원이 부족해 3달정도 정기연주회를 위해 자리를 채워줄 인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정규직원도 아니고 아침 10시부터 3시까지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녀오기 전까지 시간이어서 전업주부인 나에게 좋은 시간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10년동안 집에만 있다가 합창단이란 단체에서 연주를 할 생각을 하니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 해보기로 했다.합창단에 들어가서 보니 나와 같은 학교였던 선후배들이 정규단원으로 있었다."시간의 축"이란 걸 생각해보게 되었다.나와 같이 대학을 졸업을 하고 합창단에 들어갔을 텐데 10년이란 시간동안 그들의 음악은 나무가 가지를 치듯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었고 나는 10년전 그대로 머물러있었다.그들과 나의 시간의 농도가 달랐다는 걸 깨 달았다.다행인지 불행인지 합창단 생활이 끝나고 성대에 혹이 생겨 두 번 다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성악을 공부한 10년 전업주부 10년동안 성악에 대한 미련만 품고 살았는데, 정말 미련없이 음악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블로그의 시작 (제2의 인생이 시작되다)
우연한 기회에 블로그를 알려준다는 강의공지를 보았다. 내가 블로그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블로그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고 싶었다. 어떠한 키워드를 쳤을 때 상위노출이 되는 기술적인 노하우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램과는 다르게 블로그수업의 첫 번째 숙제는 “당신이 잘하는 걸 써보세요”라는 주제였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질문을 받는 순간 막막함과 동시에 나에게 잘하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결혼하고 집에서 10년동안 아이들만 키웠는데..똥쌀 때 한 놈은 울고 한 놈은 엄마 찾아서 둘 다 안고 싼 이야기 마당에 내가 잘하는 걸 쓰라니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가정주부로 아이들만 키웠습니다. 집에서 살림 만하여 잘 하는게 딱히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적었다. 나는 잘 하는게 정말로 없었던 걸까?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과거에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 어떤 꿈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끼가 넘치고 활발한 음대생 친구들 사이에서 늘 유쾌했고 큰 목소리로 분위기도 잘 띄었다. 결과야 어떻든 뭐든지 열정적인 나였다.그런데도 엄마가 되어서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다.하지만 블로그에 매일 일상을 적기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육아전쟁이 그럴싸하게 보였다.길었던 육아터널을 잘 해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팍팍했던 내 인생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