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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방

'개인 일탈 vs 사회 문제' 프레임을 넘어서려면?

by 정병진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방송 전면에 등장한다. 주로 <그것이 알고싶다> 등에 나오는 범죄심리학 전공 교수다. 이들은 연쇄살인범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또다른 희생자를 막는 분야에 특화돼 있다.

등장인물의 스토리 텔링이 먹힌다는(시청률이 나온다는) 측면에서 방송은 이들 전문가들을 좋아한다. 나부터도 뉴스를 진행항 때 저 범인이 사이코패스인지 소시오패스인지 구분해달라고 요청하며 프로파일러의 덤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들에 대한 믿음은 이렇게 확대 재생산된다.

이분들이 훌륭한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그런데 최근, 범인 개인보다는 도시 전체를 두고 범죄 예방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미 플로리다 소재 대학 교수를 만났다. 범죄학의 발상지 미국에서는 범인의 심리 분석보단 공권력을 어디에 배치했을 때 범죄 빈도가 줄어드는지가 더 주류라는 말을 들었다.

예를 들어 A 주유소를 중심으로 범죄 발생 빈도가 높을 경우 여기에 경찰차 한 대만 갖다 놓아도 범죄가 상당 비율 감소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지점을 '핫스팟'이라고 하는데 미국은 연구자들을 위해 아주 세세한 정보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경찰이 협조해주지 않아 연구 자체가 어렵다. '땅 값 떨어진다는' 민원이 무섭다는 이유라고 한다. 그는 "간혹 동 단위 세세한 범죄 발생 자료가 한국에서도 발표되곤 하는데, 보통 이런 자료는 경찰 고위층에 연이 닿을 때 입수 가능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906121051395420_t.jpg 전 남편 살해 용의자 고유정.

고유정 사건 같은 일이 도마 위에 오를 때면 어김없이 '잔혹한 개인 범죄'냐 '사회 구조적 문제'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론 고시생 때 단골 논술 주제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이 논제가 스테디셀러다. 범죄에 대부분 그 두 가지 측면이 고루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 자체의 잘못된 마음과 행동이 죄를 낳을 뿐더러 그러한 결정에는 범인이 자라오거나 처한 환경 또한 필시 영향을 준다.

그간 범죄 원인 분석은 주로 개인의 책임론이나 범인의 심리 분석에 치우쳤던 경향이 크다. 그런데 범죄 발생 자체를 구조적으로 줄여보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도 최근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관점이 슬슬 개인에서 구조로 옮겨가는 것 같아 의미가 있어 보인다.

0301_06.jpg 범죄예방디자인연구정보센터 자료.

하지만 도시 차원에서 범죄를 줄이려는 노력이 시너지를 내려면 경찰력 등 치안 당국의 협력이 필수다. 신고를 하면 경찰이 바로 출동하고 범죄 우려 지역에는 미리 순찰 인력을 늘리는 등 인력 운용이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공권력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범죄를 예방하려는 연구가 해외에서 활발하다는 이야기는 당연한 얘기 같은데 한국에선 여건상 생소한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더 다양한 관점들이 연구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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