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 실사 판으로 제작돼 개봉될 때가 종종 있다. 2D 그림이나 3D 그래픽으로 구현되던 캐릭터들은 실사 버전 영화에서 조금 더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거나 '진짜 같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곤 한다.
그런데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쓴 발터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진짜'를 본 적이 없다. 화면에 점처럼 찍혔다 사라지는 픽셀, 즉 이미지의 가장 작은 단위가 서로 뭉쳐졌다 사라지는 형상을 시각으로 인지할 뿐이다. 곰돌이 푸가 아무리 실감나게 움직이고 알라딘 친구들이 활기차게 스크린을 활보해도 그건 그저 픽셀 덩어리일 뿐이다. 우리는 픽셀 덩어리를 보며 웃고 운다. ⠀ 발터 벤야민은 이를 '아우라의 붕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원본은 기술적으로 복제된다. 사진이나 영상기기가 발달한 덕에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손바닥 안에서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다. 실제 현장에 가서 원본을 보면 원본만의 뭔가를 느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 원본 형상을 쉬 접할 수 있는 시대 속 현대인은 붕괴된 원본의 아우라를 구태여 복원할 생각이 없다. ⠀ 아우라의 붕괴는 급기야 사실 왜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온라인 혹세무민의 첨병 '가짜 뉴스(fake news)'가 대표적이다. 가짜 뉴스는 주로 선거철에 폭증한다. 후보자 프로필에 있지도 않은 전과를 교묘하게 집어넣거나 불륜설을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 퍼뜨린다.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당사자가 항의하더라도 이미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하는 '진실공방'으로 흐른다면 게임 끝이다. 선거가 끝난 후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 결과를 어그러뜨린다. ⠀ 이런 기술의 최신 버전이 딥 페이크(deep fake)다. 단순 왜곡을 넘어 왜곡된 진실을 새로 창출한다. 딥 페이크는 정교한 영상 합성 기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다른 사람 입 모양을 찍어 집어넣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입에 다른 사람 입을 합성한다. 놀랍도록 정교하게 합성된 그 입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관계 당국은 딥페이크 퇴치에 초비상이 걸렸다. ⠀ 나아가 연예인 얼굴에 포르노 배우의 몸을 합성한 뒤, 입술까지 자연스레 합성시켜 대사를 읊조리게 만든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딥페이크의 타깃은 비단 연예인이나 정치인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제압할 수 있을까. 딥 페이크처럼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은 혁신적이다. 딥 페이크의 기술을 역이용해 대항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7월호에 실었다. 이들은 사명감으로 일한다. ⠀ 먼 나라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국내 유명 아이돌 가수들도 어설피 합성된 음란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상당하다. 일반인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도용당해 피해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딥 페이크 같은 기술을 이해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기술복제 시대는 아우라의 붕괴를 넘어 원본마저 파괴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