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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제작발표회 때 감독의 '태도 논란'이 일었던 드라마다. 기자들이 뭘 물어보든 감독은 "재밌게 만들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임수정 배우와 자꾸 딴짓하면서 질의응답에 집중하지 않았다. 이러면 좋은 기사가 나오기 어렵다. 실제로 '태도가 어수선하다', '책임감이 없다'는 주제의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내 뮤즈 임수정 배우를 데려다 찍으면서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어쩌나 싶었다.


게다가 드라마 제목은 왜 이렇게 긴 걸까.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로 공력을 쌓은 권도은 작가가 대본을 썼다던데 믿음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입봉작이라서 제목을 보도 친화적으로 못 뽑은 건가 싶었다.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말이 긴 걸 싫어한다. 나도 첫 직장에서 '기사 제목은 12자 이내로' 쓰라는 교육을 받았다. 기사보다 호흡이 긴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제목을 보통 한 단어나 구 정도 급으로 줄인다. 그런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라니. 이걸 어떻게 줄여서 불러야 하나 내가 다 막막하게 느껴졌다. 막상 공식적으로 사용된 '검블유'도 직관적이지 않은 것 같아, 도돌이표처럼 우리 수정 누나가 다시 한 번 걱정됐다.


헌데 모든 건 기우였다.


드라마는 정말 재밌었다. 타깃이 분명했다. 여성. 젊은 여성들 취향 저격하는 각종 요소가 그득했다. 패션이나 메이크업, 예쁜 공간을 비롯해 트랜드는 물론 남녀 권력 구도를 정반대로 뒤집어버리는 설정까지.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의 세련되고 매력적인 미러링이 큰 거부감 없이 펼쳐졌다. 뭐 이에 대한 후기는 사람들이 워낙 여기저기 많이 작성해놓은 터라 나까지 긴히 더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 내가 주목한 건 따로 있었다. 우리 수정 배우님 이야기는 언제 한 번 날잡고 따로 정리하고, 여기선 설지환 역을 맡은 배우 이재욱을 짚어본다.

98년생 배우다. 나보다 13살 어리다. 그런데 연기가 깊다. 톤이 안정적이다. '약간 정극 톤인데?' 아니나다를까.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이다. 보통 내가 입시 연기 준비할 때 알게 된 정보들을 종합하면 중대 연극과 출신은 정극 연기, 즉 연극 기반의 정통 연기가 좋고 동국대가 영화 기반의 생활 연기, 한양대가 정극과 생활 연기의 반반(?)이라는 평이 많았다. 서울예대는 연기 차원에선 뮤지컬과 생활 연기가 강했고 방송 및 예술계 전반에 '예전 출신'이란 이름으로 상당수가 포진한 것으로 유명했다. '예전'은 서울예대의 개명 전 이름인 서울예전(서울예술전문대학)의 줄임 말이다.


보통 정극 톤의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드라마에서 과하게 느껴지는 연기를 할 때가 많다. 호흡이 너무 깊고 톤이 묵중하게 잡혀 드라마용 생활 연기 또는 방송 연기를 할 때 다소 느끼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설지환 역으로 분한 이재욱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디오가 듣기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안정적인 호흡과 톤 조절이 좋았다. 덕분에 극중 '드라마 배우(장모님이 왜 그럴까)' 역할을 연기할 때와 설지환 역을 보여줄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연출해낸다.


이재욱의 이런 능력은 전작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과 비교하면 명료해진다.

상단 '설지환 하단 '마르코'

극중 마르코 역으로 분한 이재욱은 게임을 함께 개발한 세주(엑소 찬열)와 마주하는 장면마다 '생 양아치' 같은 불량스러움을 보여준다. 디테일한 '싸가지' 연기가 일품이어서 짧은 분량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쩜 저렇게 내가 본 실제 양아치들 톤과 이리도 비슷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 마르코가 이 설지환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특히 상대역과 궁합이 참 자연스러웠다. 여기서도 이재욱의 내공이 느껴졌는데, 차현 역을 맡은 이다희 씨가 훨씬 선배인데도 설지환이 그 관계를 '날아가지 않게끔' 잡아주는 게 보였다. 차현은 그 안에서 너무 예쁘게 빛났다. 설지환은 상대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알았다. 그래서 주고받는 대사들이 쫄깃하게 역할에 잘 붙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 연기를 보며 퍽 신선하다고 느낀 게 오랜만이었다.

'검블유'는 종영됐지만 입소문은 여전하다. VOD 다시보기가 꾸준하게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뒤늦게 드라마를 알게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웰메이든데?'하면서 주위에 재추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초반에 언론 홍보만 잘됐어도 시청률 7%대 이상은 유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다 아쉬웠다. 재밌고 매력적인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 꼭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뭇 여성들을 '내 배우 앓이'에 빠지게 만든 이재욱에게도 주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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