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어린이가 여전히 표적인 세상
그녀는 수련의 자격증을 따기까지 불과 6개월을 남겨둔 의대생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열심히 공부한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주말에 남자 사람 친구와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죠.
차가 다 끊긴 시각, 버스정류장에서 올라탄 버스는 알고 보니 무허가 버스였습니다. 버스에는 6명의 취객들이 타고 있었죠. 그들이 괴수로 변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성의 친구를 흠씬 두들겨 패 제압했습니다. 이윽고 여성에게 옮겨간 그들은 악성 전염병처럼 악랄하게 그녀를 겁탈합니다. 강하게 저항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물어뜯고 싸웠지만, 그녀는 점차 의식을 잃어갔습니다.
괴수들이 떠난 뒤 그녀의 몸 안은 녹슨 철 막대로 훼손됐고, 창자 일부가 뽑혀 나왔습니다. 둘은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알몸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인도에서 2012년 12월 16일에 발생한 '조티 싱' 사건입니다. 그녀는 봉변 13일 뒤 숨졌습니다. 재판에 서게 된 괴수 중 1명은 "강간당할 때, 저항도 하지 말았어야"했다며 "조용히 강간을 허락했으면 됐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2018년 조티 싱 살해 피고인 6명 중 4명은 사형선고가 확정됐습니다. 1명은 자살했습니다. 1명은 3년 복역 후 만기 출소했습니다.
사람 소중한 줄 모른다
이 사건의 원인을 둘러싼 해석은 다양합니다. 구조적으로는 남성 우월주의가 팽만한 인도 사회 분위기가 꼽힙니다.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조혼 등을 강요하는 왜곡된 문화도 한 몫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 '강간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습니다.
구조를 떠나 표면적으로 보면 어떨까요. 저는 사람의 가치를 낮잡아 보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인권이 될 겁니다. 그냥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생각으로 풀어서 짚고 싶습니다.
교육을 못 받아서 그랬든, 교육을 받고서도 저 모양이든 간에 여성과 어린이 등 약자를 공격하는 범죄는 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식의 부재 속에 저질러집니다. 만국 공통으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까요?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의식이 형편 없을 때, 피해를 보는 건 늘상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명예 살인
2008년 이라크 자이툰 파병 시절 제가 겪은 일입니다. 일과 시간이 끝나면 TV를 보곤 했습니다. 채널을 돌리며 이라크 아르빌 현지 방송도 자주 보게 됐는데요. 한국의 음악 방송과 유사한 채널도 더러 있습니다.
이 채널에선 하루종일 뮤직 비디오가 재생되는데, 특이한 건 여자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 시놉시스가 대부분 '명예 살인'과 관련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성 가수가 절벽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함께 중간중간 뮤직 드라마가 전개되는데요. 남성 가족들에게 돌을 맞아 죽는 딸의 스토리가 주류(?)였습니다.
KBS <아침마당>과 비슷한 아침 프로그램도 자주 봤습니다. 남성 진행자가 시청자 전화 연결을 합니다. 엉엉 울며 전화를 붙든 여성은 한맺힌 목소리로 뭔가를 진행자에게 토로합니다. 아랍어라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대번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전화 연결 중간에 재생되는 자료 화면이 명예 살인 당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명예 살인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딸을 처형하는 살해입니다. 도대체 이 명예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걸까요.
"여성의 처녀성과 절대적인 순종은 가족의 명예와 직결돼 있고, 이 명예는 여성의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간주된다. 그게 쿠르드족의 방식이고 또 요르단과 파키스탄의 방식이다. 내가 방문하는 모든 국가에서 이 말을 들었다. 우호적 관계를 다지고 사업상 거래를 확정지으려고 떼어주는 필지처럼, 여성에게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열네 살짜리 소녀를 사십대 중년 남자에게 보내버리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문제는 여성의 지위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272~273p)"
핵심을 꼽자면 '거래' 때문입니다. 딸 부모가 잠재적 사돈인 남자의 집안에 딸을 팔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여성의 지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결혼 찬조금을 적게 냅니다. 딸 부모 입장에선 아이를 더 일찍 조혼 보낼수록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벌새처럼
한국도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역시 여성에게 집중됩니다. 영화 <벌새>를 보면 이런 인식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세밀하게 침투해 있었는지 단적으로 목도하게 됩니다.
<벌새>는 1994년도 중학생 은희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영화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꿈도 조금씩 그려나갈 나이지만,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풀며 주먹질하는 오빠와 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현실에 지쳐 곤죽이 된 어머니 밑에서 은희는 혼란스럽고 막막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이자 1초에 날갯짓을 80번 이상 하는 벌새가 삶에 버둥거리며 몸부림치는 은희의 모습과 겹쳐보인다는 김보라 감독의 설명은 그래서 납득이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수대교가 무너집니다. 어떤 초월적 존재가 철퇴를 내린 것마냥 온 사회가 충격으로 얼얼해집니다. 답답한 삶 속 한 줄기 사이다 같았던 학원 선생님마저 이 사고로 잃어버린 은희에겐 거대한 구조물의 붕괴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희망을 송두리째 흔들고 빼앗은 인도의 성범죄자들처럼 괴수로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그 시절의 낡은 의식들이 스멀스멀 모여 뭉쳐진 괴수.
어쩌면 은희는 '그 시절 사람'을 대표하는지 모릅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풋사랑부터 권위적인 어른들까지 모두 사람 소중한 줄은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 시절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조금은 나아졌지만,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벌새의 백미는 은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찬란한 순간들일 겁니다. 관객들은 보고 있지만 은희는 미처 모를 그 나이의 아름다움과 귀함. 너무 예쁘고 빛나는 아이가 차별·폭력이 '당연했던' 그 시절의 낡은 의식들과 대비됩니다.
인생은 한정판입니다. 명품 가방 한정판이라고 해봐야 처분하지 않는 이상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 인생은 세상 유일무이할 뿐더러 죽고 나면 사라집니다. 아예 소멸된다는 점 때문에 명품 가방이나 슈퍼카보다 어쩌면 더 살뜰하게 가치가 크지요. 따라서 여성을 넘어 인간 고유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습니다.
시대를 기록하는 눈
BBC 저널리스트 수 로이드 로버츠가 책 <여자전쟁>으로 고발하는 각국의 여성 인권 유린 실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은희 또래의 아이들이 조혼으로 팔려나가는 아이들 사례만 보더라도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들 중 열여섯 살 이상으로 보이는 신부는 없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여섯 살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 한 어린아이는, 진홍색과 금색 드레스로 인형처럼 차려 입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 새카맣게 아이라인을 그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287p)"
은희 만큼이나 찬란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아이들에게 세상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책에는 여러 비슷한 사례가 나옵니다. 보스니아에서 취업 사기를 당해 성매매 클럽에 감금당한 어느 소녀 사건을 두고 아일랜드 경찰관 테리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습니다.
"클럽 주인이 소녀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여자애를 방에 가두고 옷을 벗겼는데, 그 애가 술집 주인과 단골손님들한테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정말로 돈을 냈다네요(205p)"
테리의 표정은 이내 독자의 표정이 됩니다. "그들은 아무 감정이 없어요, 전혀"라고 증언합니다.
책을 옮긴 JTBC 심수미 기자는 이 책에 대해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 대한 촘촘하고도 정직한 기록"이라며 "관념적인 선언문보다 팩트의 성실한 나열이 훨씬 더 큰 울림을 주곤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정적인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오롯이 느끼려면 역설적으로 이런 끔찍한 기록이 필요한가 봅니다.
책을 읽을수록 보다 또렷해집니다. 폭력에 아스러져간 여성과 아이들의 눈빛이, 영화 포스터 속 은희의 눈빛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