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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Sep 14. 2020

춤병

영화 '유월'이 보여준 자유를 향한 귀여운 갈망

중 2때 우린 춤병에 걸려 있었다. 춤추는 병. 나를 포함해 우리 학년 대부분이 그랬다. 보통 우리 중학교 루틴은 이랬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청소를 하고 종례 준비를 한다. 이때 우리는 춤을 췄다. 힙합 브레이크 댄스였다. 책상을 교실 뒤로 쫙 밀고 대충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버린다. 음악에 밝은 친구가 전축으로 힙합 음악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튼다. 둠칫둠칫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누구는 헤드스핀을, 누구는 윈드밀을 돌았다.

싸이월드에서 찾은 사진. 춤 제일 잘추던 친구들은 콘서트까지 열었고, 나는 사회를 보거나 꽁트에 참여하는 쪽으로 전향했다.

누가 충청인이 느리다 했던가. “떴다!” 한 마디가 전령처럼 돌면 음악이 꺼짐과 동시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우린 청소 모드로 돌변했다.


거의 동시에 청소 상태를 순시하기 위해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 모 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른다. “이 쒜끼들 뭔 헷짓거리들 허는 겨~” 하면서 깊이 추궁하진 않으셨다. “허허 쒜끼들..” 하면서 어슬렁 어슬렁 딴 반으로 가신다. 그럼 또 우린 못 다한 나이키를 차거나 나인틴을 돌고 에어트렉을 시도하다 나뒹굴었다.

싸이월드에서 찾은 사진. 춤 제일 잘추던 친구들은 콘서트까지 열었다. 대천 아이돌 임폴스. 나는 사회를 보거나 꽁트에 참여하는 쪽으로 전향했다.
그 시절 우리의 춤바람은 코로나19 못지 않게 전염력이 강했다.


지금 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은 억압 속에서 급속도로 전염되는 것 같다. 당시의 춤바람은 소위 ‘줄빠따’가 당연하던 권위적 학교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퍼졌다. 힙합은 자유를 갈구하며 자아를 표출하는 대표적인 장르 아닌가. 내가 다니던 대명중학교 뿐만 아니라 영원한 라이벌 대천중학교에도 춤바람이 불었다. 롤러장에서, 대천천 둔치에서 자유가 춤을 매질 삼아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녔다.


이는 코로나 국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최근 뮌헨의 ‘잉글리시 가든’이라는 공원에 다녀왔다. 여의도 면적이 2.9제곱킬로미터인데, 이곳은 공원 크기만 3.7제곱킬로미터다. 거대한 공원 곳곳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게 다 사람들이다. 대부분 수영복 차림. 난 멀찌감치 소심하게 누워 자유를 만끽했다.

마스크를 챙겨갔고, 타인과의 거리를 최대한 유지한 채 둘러보다가 혀를 내둘렀다. 각자 자리 깔고 바닥에 드러눕거나 급류 코스에서 수영을 즐기며 햇살 가득한 맑은 날을 즐기고 있었다. 나체족은 전라 상태로 온 몸을 햇살로 멸균 중이었다.


유럽인들은 자기 일상 속 자유를 절대로 포기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연방정부, 주정부의 각종 코로나 규제 속에 아슬아슬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매주 주말 베를린과 함부르크, 뮌헨, 퀼른 등에서는 코로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2천 명 이상 집회가 열린다. 매일 독일 전체에서 1천 명 이상의 신규 감염자가 나오지만 추가 사망자는 0에 수렴하고 있다. 회복한 사람의 추세는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다. 이런 통계도 한몫 한 걸까. 자유를 갈망하는 독일인들의 마음은 그렇게 맑은 햇살 아래 급속도로 퍼진 상태다.


댄스 영화 ‘유월’을 보면서 상술한 장면들이 오버랩 됐다.


https://youtu.be/zOXFqZ9rGUo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춤을 추는 소년 유월. “질서는 약속”이라고 역설하며 매서운 눈으로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을 얼어붙게 만들던 담임 혜림. 자유와 억압의 충돌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보지만 갑자기 발발한 댄스바이러스에 터져나오는 자유를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집단무용증’의 원흉으로 지목된 유월은 선생들로부터 추격을 당한다. 하지만 유월이 지나가는 모든 곳은 자유가 전염된다.


나를 억압하는 모든 굴레를 톺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나 자신을 ‘나이스하게’ 보이고 싶어 자의반 타의반 씌운 굴레, 비정규직-정규직 프레임으로 시야를 좁혀버려 나 자신과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소홀하게 만들었던 구조적 굴레, ‘말공장’ 방송국 노동자로서의 굴레, 다이어트, 가장, 큰아들, 안정된 삶 등등등.


영화 보는 내내 시종일관 다리 떨며 신나게 방구석 자유를 즐겼다. 그 시절 춤바람 스탭이라도 밟아보는 양, 모두가 잠든 이 밤, 나 혼자 리듬에 흔쾌히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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