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병진 Sep 05. 2021

디피, "왜 보고만 있었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소환한 불편한 진실

화제작은 으레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마련이다. <D.P>도 그랬다. 디피는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의 줄임말이다. 처음 들어본 용어지만, 탈영과 자살 사례가 빈번했던 내 군생활 당시를 떠올려 보면 저런 보직도 필요하겠구나, 싶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탈영병을 잡는 두 주인공의 활약보다 그 탈영병들의 속사정과 군대의 구조적 부조리라고 꼽고 싶다. 


왜 보고만 있었을까 


극 중 괴롭힘을 당하던 병사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피해자의 누나는 묻는다. 


 "왜 보고만 있었어요?"


구조 때문이다. 부조리한 구조는 무겁고 무섭다. 특히 군생활 돌아가는 매커니즘에 익숙지 않은 신병때부터 재난처럼 들이닥치는 내무실 부조리에 노출되다 보면, 이에 항거하거나 연대를 꾀하기가 어렵다. 


이를 테면 내가 신병일 때 우리 내무실엔 '군번이 꼬인' 병장만 가득했다. 어느 날 갓 병장을 단 속칭 '물병장'이 짬밥의 상징 '흰색 메리야스'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소대 30여명이 전체 집합해야 했고, 그 물병장은 병장 2, 3호봉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왕고참' 다음이었던 '투고'가 그 흰 메리야스를 벅벅 찢어 물병장에게 가래침 세례와 함께 흩뿌릴 때, 이등병이었던 나는 무서웠다. 인간이 너무 무서웠다.

유족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입소 후 '전쟁기계'인 군대 문화에 길들여진 사병들 입장에선, 부조리에 항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암기 강요는 어떤가. 자대 배치 후 첫 초소 근무 전까지 30여개 군가와 중대원들 군번, 간부 차량 넘버를 비롯해 쓰잘데기 없는 총기 규격 등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워야 한다. 첫 근무 때 고참이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신병이 틀리면? 그를 가르친 중간 선임부터 아래로 오밤 중에 "기상, 이 XX 가르친 XX 누구야!" 불벼락을 맞게 된다. 내리갈굼의 연속이다.


나는 암기 사항을 몰래 작은 종이에 적어 틈틈이 외웠다. 취침 후 모포 뒤집어 쓰고 논산훈련소 앞에서 산 싸구려 전자시계 불빛을 켜 첫 근무에 대비했다. 새벽 3시 경엔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외우고 또 외웠다. 머리가 나쁜 편인데, 공포에 몰리다 보니 극도의 집중력이 발현됐다. 첫 근무 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외웠고, 내 군생활은 슬슬 풀렸다. 하지만 "넌 이 XXX야 장교 같애. 으어? 증병쥐니~ 이 XXX야"라며 '잘해도' 내 가슴팍에 발세례를 퍼붓는 선임이 있었다. 또라이 총량의 법칙은 군대에선 틀림이 없다.


이러한 부조리가 내무 생활 곳곳에 깔려 있다. 나도 예초기에 쓰일 휘발유를 멀뚱히 바라보다 '저거 마시면 군병원 가서 좀 쉴 수 있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계급이 높고 저열한 사람에게, 그 집단에 느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이겨내기 쉽지 않다. 그 구조가 개인이 어찌 하기에는 너무 다단하고 힘들다.


이런 거 민원 넣으라고 '소원수리'라는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이다. 행정병 선에서 걸러져 신원이 공개되기 일쑤였다. 타중대 아저씨가 소원수리 넣었다가 걸려 극한의 왕따와 괴롭힘을 당해 내가 섬기던 군인 교회 예배당에 앉아 하염 없이 율던 기억이 난다. 


무서운 건, 그렇게 당했던 사람들이 후임들에게 똑같이 한다는 점이다. 보고 배운 게 그게 다인데다, 고참이 되면 내무실 내에선 신과 같은 존재가 되다 보니 그 구조가 잘 안 무너진다. 가정 폭력범인 생부에게 시달리던 아들이 커서 자녀와 아내를 학대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과 꽤 비슷한 대목이다. 


군필자들은 '내무 생활'을 해봤느냐 아니냐를 따진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 복무자나 공익 요원을 은근 무시하는 이유다. 그 피해의식 뒤섞인 우월감도 이런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보면 무리일까. 


괴롭힘의 타깃, 약한 고리 


괴롭힘은 늘 약자가 타깃이다. 작품에선 유도 선수 출신이나 소년 감성으로 애니메이션과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일병이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다. 마초 문화가 가득한 군대 내에서 갈굼 당하기 딱 좋은 캐릭터다. 지역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고졸인데 성격이 내성적, 혹은 나이가 어릴 경우도 타깃이다. 일머리가 없어 자꾸 실수를 연발하는 속칭 '고문관'도 괴롭힘의 대상이다. 내무 생활이 버거운 '약한 고리'들이다.

후방 부대였던 내 자대는 여성 군무원들도 복무하는 창고 부대였다. 하여 벌건 대낮에 초소 근무를 하면서도 극중 피해자가 당했던 성적 학대를 똑같이 자행하는 선임들이 부지기수였다. 내 맞선임은 매일 밤 점호 직전, 모두가 각을 잡고 점호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고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이불 뒤집어 쓰고 많이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코를 골면 방독면을 씌우는 건 워낙 일상이다. 그런데 극에선 물까지 부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소름 돋았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
수양록은 부메랑 


군대 가면 일기 같은 걸 쓰라고 한다. 수양록이다. 그런데 여기에 '힘들다', '애인 보고 싶다'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군 당국은 그 수양록을 증거 삼아 '이렇게 자살 징후가 있었다', '부적응자였다' 이런 식으로 해당 병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교로 복무한 친구들도 "애들 수양록부터 빡세게 쓰라고 가르치라더라"며 후일담을 털어놓는다. 책임 회피와 전가가 횡행하는 군 조직 문화를 고려하면 저 수양록은 개인 수양을 가장한 '미리 쓰는 자술서' 개념에 가깝다. 


사족 


손석구가 우리 수송중대장하고 하는 짓, 목소리, 외모가 너무 똑같아서 깜놀했다. 이등병 때 축구하다가 내가 중대장 다리를 걷어차서 입원시킨 적이 있었다. 선임들이 엄청 통쾌해 했다.

운전병이었던 나는 간부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나 때문에 정강이뼈에 금이 간 수송중대장은 전역 후 물리치료학을 전공해 클리닉을 하나 열고 싶어했다. 죽기살기로 로비, 접대해 쟁취해야 하는 군대의 승진 게임에서 뒤로 밀린 비육사출신 대위의 쓸쓸한 자기 고백. 병사들에겐 추상 같은 간부들도 군대가 싫어지면 사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저씨일 뿐이다.


위병소 

첫 휴가 나갈 때, 저 정지선 앞에서 살짝 움찔한다. 그리고 스윽 뒤를 돌아본다. 위병소 근무자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얼른 싸제로 나가라고 눈짓한다. 저 일단정지선을 넘어가면, 공기부터 산뜻하다. 


열외 


잡초 제거나 기타 부대 관리 일과를 '작업한다'고 칭한다. 그런데 계급이 낮은 쫄병이 최고참이나 간부와 같이 뭔가를 할 때는 작업 열외다. 보통 족구 잘하는 병사가 낙점된다. 성은(?)을 입은 후임은 땡볕에서 작업하는 무리에서 열외된다. 이때 후임은 고생하는 선임들을 의식해 표정관리를 잘 해야 한다. 

작업 중인 사병들. 보통 잡초 제거나 삽질이다.

나는 특이하게 부대 내 군무원 위로 뮤지컬 공연 준비를 한다고, 부대 행사 사진 촬영한다고 작업을 자주 쨌다. 상병 달자마자 이라크 파병을 떠났다. 이라크는 거기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 후임들은 내가 내무 생활을 상대적으로 짧게 했기 때문에 나를 진정한(?) 선임으로 대우하진 않았다. 이라크에서 복귀한 뒤 한 달 휴가를 다녀오곤 곧 전역했다. 작품에서도 정해인이 간부와 이야기 하며 작업 열외된 장면이 나와 피식 웃음이 났다. 


트라우마처럼 인이 박힌 군생활. 잊으려 하기 보단 우리 사회에서 저런 부조리가 그대로 이식된 지점을 짚어내 개선하고 바꾸는 노력에 동원해야 하지 않을까. <D.P>는 그런 면에서 답답하고 유쾌한, 쓴웃음과 눈물이 베어나오는 명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