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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산문

독일 공교육

초1 전학 온 딸래미 첫 등교일

by 정병진

"교실까지 찾아갈 수 있겠어? 아빠가 교실 앞까지 데려다줄까?" "아냐, 나 혼자 찾아갈 수 있어. 어제 밤새 상상했거든" 오늘 아이가 첫 등교했습니다. 저와 아내도 밤새 걱정, 설렘, 긴장으로 잠을 설쳤는데 아이는 오죽할까요.

그렇게 아이를 3층 교실로 올려보내고, 아이 모르게 스윽 뒤를 밟아봅니다. 3층까지 다른 아이들과 섞여서 쭉 올라가더니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곧장 교실로 향하더군요. 주사위는 던져졌고 저와 아내는 기도로 뒷빋침할 뿐입니다.

이 학교에 보내기까지 여러 고민이 많았습니다. 독일인 여자아이들이 주류인 사립 여학교에 부담스럽지 않은 학비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모를 남자아이로부터의 폭력, 각국 친구들로부터 변형된 독일어 습득을 우려했던 건데요.

하지만 이 또한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구별짓기' 아닐까 싶었습니다. 독일인 친구 위주로만 만나게 하고, 남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계하는 법부터 알려준다면 독일까지 와서 아이에게 뭘 가르치게 되는 것인가 비판해보고 회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공립학교에는 독일인 친구들이 다수지만 동유럽권, 무슬림 아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다들 영락없는 귀여운 초딩들입니다. 상담 선생님과 담임, 교장 선생님은 따뜻하고 친절합니다. 독일어 집중 코스를 개설한 이 지역 유일한 공립학교 교원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결론은 '독일 공교육 시스템 신뢰'입니다. 다양성의 가치를 아이가 배우길 소망합니다. 다양성의 어우러짐이 아이에게 큰 힘을 주길 바랍니다. 국적을 떠나 모두 존엄한 인간이라는 가치와 다종다양한 어우러짐 속에 유럽이 굴러간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왠지 부끄럽기도, 그러면서 현실적이기도 했던 고민의 실체는 '무지'였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사회가 작동하는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덜컥 커져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수 독일 친구들 위주로 사귀면 독일어도 더 좋아지고, 남들 가고파도 주소 달라 못 보낸다는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솔깃한 욕심도 보였습니다.

그 어떤 색안경도 배제합니다. 저희부터 유럽의 가치와 힘을 존중하기로 결정합니다. 교육 차원에서만큼은 저희 가족 모두, 오늘에서야 독일에서 첫 걸음을 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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