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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산문

입술의 30초

삶의 힘, 아이들

by 정병진
IMG_0004.JPG 독일 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들

"아빠 떨어지지 않게 내가 잡아줄게" 욕조 속에서 내 무릎에 앉은 아들이 말했다. 아들과 물 받아놓고 거품 목욕을 처음 해봤다. 아들이 미끌어져 물 속에 쏙 빠지지 않게끔 내 다리에 앉혔더니, 녀석이 곱씹을수록 고마운 말을 건냈다. 아들이 고작 30초 말했을 뿐인데 듣는 내게 남은 여운은 길다.


맞다. 독일 나이로 3살인 아들과 7살 딸은 나를 붙잡고 있다. 고된 현실에 부딪혀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좌절과 실망에 빠지지 않도록 꽉 붙들었다. 엄마나 아빠가 조금이라도 고단해보이면 딸과 아들은 각각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모를 웃게 만든다.


무엇보다 기도는 가장 큰 힘이다. "예수님, 엄마 아빠 마음 기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안 아프게 해주세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엄마와 아빠를 목적 그 자체로 여기는 아이들의 기도는 힘이 있다. 기도 응답이 곧바로 온다. 아내와 내가 세상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다.


"엄마 아빠 딸로,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루에 한 번 이상 이 말을 꼭 해준다. 정말 고맙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말에 힘이 있다. 아빠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겠다는 아들의 말은 용기를 준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딸의 고백은 감동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에 30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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