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들 Ep.08 쥬트 아뜰리에 대표 신유미 님
Editor's Intro
프랑스어로 '쥬트(zut)'는 ’웁스! 어머!’란 뜻의 일상 표현이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공부하거나 그림 그리며 놀 때 혹은 작은 실수를 했을 때 쓴다. 이런 뜻을 담아 쥬트 클래스가 2010년 탄생했다. 창립자 시도니 벤칙(Sidonie Benchik)은 쥬트가 “일상적인 프랑스어로 뭔가 실수했을 때 쓰는 표현”이라며 “실수를 통해 예술이 탄생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예술의 비중이 큰 프랑스 교육에서 아이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을 길러주는 쥬트 클래스는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시도니에게 프로그램을 직접 사사한 쥬트 아뜰리에 대표 신유미 님은 아이들이 단순히 그리기, 만들기 기술이 아닌 종합적이고 예술적인 사고방식을 기르도록 돕는다. 일상에 재미를 더하는 예술 놀이에 친환경 감수성까지 길러주는 쥬트 클래스는 무엇이 다른 걸까.
특별히 프랑스 아트 클래스에 매력을 느끼신 이유가 있을까요?
쥬트라는 수업을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다가 발견했어요. DIY 로 나만의 인형을 만들어주는 키트였는데, 구성되는 이야기나 만들기 과정이 너무 창의적이고 재밌는거에요. 내가 직접 배워보면 좋겠다 싶어 프랑스에 가서 이 프로그램을 교육자로서 이수하게 됐어요.
가서보니 프랑스 유아 교육의 8할이 예술이더라고요. 그림이나 만들기가 유기적으로 포함된 종합적 개념의 예술을 배우죠. 프랑스 현지에서 쥬트 보조 교사로 수업에 참여하며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질문 하나 던지면 아이들은 전부 손 들고 자기가 먼저 대답하려 했어요. 간단한 답변을 하면서도 너무 자신감이 넘쳤죠.
저는 평소 제 아이가 수업 시간에 ‘몰라요’, ‘안 할래요’ 이렇게 쭈뼛 대며 움츠러들지 않길 바랐어요. 프랑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안 그러더라고요. 제 딸아이는 프랑스 아이가 아니니 이런 교육, 이런 학업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내가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겁니다.
프랑스 현지 쥬트 클래스에서 친환경 콘셉트의 수업도 진행되나요?
‘환경’을 콕 집어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기 보다 프랑스 문화 자체가 새로운 물건을 잘 안 사요. 사람들이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요. 예를 들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선물을 줄 때 우리는 주로 새로운 물건을 사서 주잖아요. 프랑스 아이들을 기존에 갖고 있던 소중한 물건을 재가공하거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해 선물로 주곤 해요. 할머니의 생신 선물을 준비했던 한 아이가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가 이제 입지 않는 옷을 활용해 인형을 만들어 선물로 드린 거에요. 보통 안 입는 옷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버리잖아요. 그런 물건에 또다른 의미를 더해 재가공하면 새로운 오브제가 탄생합니다.
또,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달 동안 바캉스를 떠나더라고요. 대부분 탁 트인 자연으로 떠나요. 리조트나 화려한 시설을 갖춘 호텔이 아니라 높은 산, 넓은 호수,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연을 마음껏 즐깁니다. 저는 프랑스 아이들이 바캉스 떠날 때 방학 숙제 안 가져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쉴 때 푹 쉬어야 한다는 거죠. 한국에서도 아이들과 숙제 없이 높은 산이나 바다처럼 시야가 뻥 뚫린 곳으로 자주 놀러가는 이유입니다.
자연을 자주 느끼다 보면 자연스레 환경에 관한 관심이 싹틀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적잖은 기쁨을 주니까, 자연과 오래오래 공존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맞아요. 그 자연스러운 실천 중 하나가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것일 텐데, 새 것을 잘 사지 않는 문화, 좋은 걸 하나 사서 평생 잘 간직하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프랑스식 삶의 스타일이 환경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에서 진행 중인 쥬트 클래스에서도 새로운 재료를 쓰기 보단 기존 재료를 재활용하나요?
네. 일반 수업 재료는 선생님들이 그런 점을 감안해서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아예 ‘업사이클링(up-cycling) ’ 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보내주신 재료를 아이들이 활용하죠. 새로 구매해선 안 되고 꼭 집에 원래 있던 물건 중 업사이클링할 수 있는 폐품을 씁니다. 앞서 말씀드린 프랑스 할머니와 손자의 선물처럼 할머니가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버려도 되는 옷을 가지고 쿠션을 만드는 겁니다. 보통 아이들과 애착인형을 만들죠. 패브릭도 옷감으로 사용된 후 버려지는 것들이 많아요. 이런 패브릭을 그냥 버리지 않고 재가공하면 의미도 더하고 환경도 생각하는 업사이클링이 가능해집니다.
업사이클링이란 버려지는 제품을 재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놓고 보면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Recycling)을 합친 말이다.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논문(전은하 외, 2018)을 보면 업사이클링은 재활용보다 더 발전된 개념이다. 독일, 스위스, 영국 등 유럽에서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적 생산과 윤리적 소비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은 혁신적인 디자인에 희소성, 친환경성까지 갖춰 2013년 산업 규모 100억 원대에서 3년 만에 두 배 규모로 성장했다.
업사이클링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캠페인도 진행해봤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일상 속 재활용품으로 작업을 해보면 그것도 나중에는 버리는 물건이 되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유팩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을 만들어요. 그걸 쭉 전시하면 모르겠지만 버리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럼 그 우유팩도 처분돼야 하고 물감도 썩어야 하잖아요. 환경에 부담을 주는 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다르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2020년에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아이들과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던진 화두는 ‘비닐봉투 사용하지 않기’였어요. 비닐봉투의 대안으로 “안 쓰는 에코백을 업사이클링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부모님들이 에코백을 모아주셨어요. 큰 에코백에 우리가 드로잉 하고 태그를 달아 쥬트 아뜰리에 공방 주변의 카페나 마트, 동네 슈퍼마켓에 비치한 거에요. 에코백을 담아둔 박스에는 “무료로 빌려드립니다. 다음에 오실 때 반납해주세요. 집에서 자고 있는 에코백도 가져와주세요” 이런 안내 문구를 적었습니다. 계속 순환되게 하는 게 저희 목표였어요. 단기간에 끝나지 않길 바랐죠. 다행히 가게 사장님들도 적극 참여해주셨죠.
아이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구나, 내가 장바구니를 안 가져왔는데 이번에 이걸 쓰고 다음에 올 때는 집에 있는 것도 가져와야지. 이런 인식이 돌고 돌게끔 ‘참여형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 반응이 어땠나요?
좋더라고요. 예술 클래스 안에서 단순히 오브제를 만드는 걸 떠나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결이 다른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도 만들고 박스에 끼워둘 작은 표지판도 만들었어요. 사용하신 분들이 잊지 않고 다시 가져오도록 이 캠페인의 내용을 담은 태그도 에코백에 달았습니다. 무언가를 그저 그린다기보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드로잉이나 글씨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니 아이들에게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환경을 주제로 아이들과 예술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정말 남다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환경이나 동물에 관한 감수성이 정말 뛰어나요. 3년 전에는 1년 내내 ‘직업’을 주제로 모든 수업이 이뤄졌어요. 우체부, 패션디자이너, 그리고 환경운동가도 주제로 다뤄졌죠. ‘세상을 바꾸는 아이들’이란 책을 보고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였죠.
환경운동가 차례가 됐을 때였어요. 저희는 아이들과 다시 머리를 맞댔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각자가 자유롭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동물을 보호하자’는 의견으로 범위를 좁혔어요.
그렇다면 멸종위기 동물은 무엇일까? 동물들은 어떤 위기에 처했는가? 이런 궁금증을 함께 풀어갔습니다.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 거북, 그간 먹이처럼 먹어왔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뱃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바다새 사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크게 경각심을 갖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 이후로 비닐, 빨대 등 플라스틱 재료를 절대 안 쓰도록 모든 쥬트 선생님들에게 지침을 내렸습니다.
클래스에 참여한 아이들은 멸종 위기 동물을 한 마리씩 담당했어요. 각자가 한 동물의 대사 혹은 사절이 돼 보는 거였죠. 아이들은 자기가 맡은 동물의 실상을 조사했어요. 그러곤 학교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런 안타까운 실상을 알리는 포스터를 게시했습니다. 피켓과 플래카드도 만들어서 아뜰리에 주변을 행진하기도 했어요. 자기가 만든 전단지도 나눠주면서.
아이들이 환경, 동물권 등에 눈을 뜨는 좋은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아이들은 한 번 수업을 듣고 나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일상으로 이어져요. 엄마가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그날 기분이 나빠요. 그럼 클래스에서 제가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니?” 물어보죠.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가 일회용에 커피 마셨어요.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거에요.
학교나 유치원에서 분리배출 제일 잘한다고 칭찬받았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요. 아이들이 조금만 밝다 싶으면 가서 조명을 꺼요. 너무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물이나 전기를 왜 아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인데 그런 세태에 비춰보면 아이들이 이 정도로 바뀌는구나 체감할 수 있죠. 한 아이가 “불을 잘 꺼야 해요. 안 그러면 북극곰이 뜨거워져요”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본인은 어떠신가요?
저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웃음)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환경을 위해 좋은 실천 방법 등을 익혀놓고선 정작 제가 실천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어..? 저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웃음)
지금은 잠시 미국에서 지내는 중이에요. 주마다 정책이 다른데 제가 있는 곳은 쓰레기 분리배출이 전혀 없더라고요. 분리배출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커다란 쓰레기를 다들 막 버리더라고요. 그냥 재사용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은데 그냥 버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충격 받는 중이에요. 마트에 장보러 가면 비닐이 찢어질 수 있다면서 두 겹, 세 겹 여러 번 포장해서 주더라고요. 종이에 담아가겠느냐고 물어보는 매장은 고작 한 군데였어요.
원래 개인적으로도 환경 이슈에 관심이 많으셨던 건가요?
아이들 낳은 뒤로 관심이 생겼어요. 결혼 전에는 솔직히 큰 관심이 없었죠. 딸아이와 쓰레기를 분리배출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건 여기에 버리면 안 되고 저건 저기에 버려야 하는데, 어라? 이거 정말 쓸만한 데 사람들이 왜 버리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환경 문제에 조금씩 관심 갖기 시작했어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든 이후 더 심각하게 느낍니다. 배달 음식으로 배출되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졌어요. 이러다가 다른 바이러스가 또 출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특히 비닐봉투는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불가피하다면 만들 때부터 잘 썩게끔 만들면 안 될까요? 이미 생분해되는 비닐백 기술은 나와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문제는 의지죠.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정치인들, 기업가들의 결단이 없으면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아요. 결단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문제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집에서 놀아줄 수 있는 아이디어도 점점 고갈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녀와 집에서 쥬트 스타일로 만들기 같은 예술 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요? 저희 보호자들과 팁을 공유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이름하여 ‘쥬트 DIY 홈클래스’!
좋습니다. 간단한 아이디어를 드리자면, 계란판을 버리지 마세요. 이 계란판 종이가 약간 폭신폭신해요. 수채화 그릴 때 쓰는 종이랑 비슷하거든요? 수채화를 그리려면 종이가 물을 머금어야 하기 때문에 폭신폭신해야 해요. 계란판이 딱 그래요. 아크릴 물감 쓰지 않고 수채화물감으로 그 오목한 부분에 색칠해보세요. 계란이 담기는 부분이 오목하기 때문에 물감이 옆으로 튀지 않아서 컬러링 만으로도 재밌는 예술 놀이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계란판을 잘라보세요. 단면으로 자르면 볼록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활용해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애벌레, 지렁이, 토끼 귀 등등 아이들이 자유롭게 뭔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모님이 먼저 ‘이걸 만들어봐’ 모양을 정해주지 않는 게 중요해요.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거들어주는 역할만 해주는 거죠. 엄마가 모양을 규정해주면 재미가 없어요. 재미가 없으면 아이들이 잘 안 하고, 그러다 보면 엄마가 막 화가 날 수도 있어요. (웃음)
사과 박스도 잘 보면 사과를 고정해주는 받침대가 있어요. 그 받침대도 그냥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하는 쓰레기가 되기 십상인데, 이걸 팔레트로 활용해보세요. 각 오목한 부분에 서로 다른 색깔 물감을 담았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그 팔레트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 오브제가 돼요. 부모님이 마무리 작업만 해주시면 그대로 벽에 걸어도 예쁜, 우리 아이 업사이클링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신유미 님에게 ‘보호’란?
음. 엄마가 생각나는 단어. 아이 키우다 보니 엄마라는 존재를 새삼 되짚어봅니다. 잔소리, 혼내는 것조차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Boho works Magazine Team
Editor 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