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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호자들

"쓰레기 끝판왕 될래요"

보호자들 Ep.07 방송인 손동혁 님

by 정병진

Editor's Intro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미화원이 아니더라도 요즘엔 플로깅(Ploggin)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인데 스웨덴에서 시작해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도 유튜브 방송으로 꾸준히 플로깅을 실천하는 방송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MBC에서 리포터로도 활동하는 손동혁 님은 특유의 친화력과 서글서글한 미소로 쓰레기를 주우며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환경 유재석'을 꿈꾸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image_1610298125706.jpeg 환경 크리에이터 쓰줍남 손동혁 님


MC? 리포터? 크리에이터? 손동혁 님을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본캐(본 캐릭터) 방송인! 부캐(부 캐릭터) 환경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쓰레기 줍는 남자, 쓰줍남이라고 합니다.


왜 쓰레기인가요.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나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웃음) 보통 일반 사람들처럼 플라스틱도 막 사용했어요. 굳이 쓰레기 문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죠.


솔직히 처음에는 방송 때문이었어요. 제 방송 캐릭터에 청정 이미지를 추가하고 싶었죠. 기존 리포터나 방송인들에게서 보기 힘든 캐릭터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다가2019년 말 우연히 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쓰레기 섬을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였는데요. 그걸 보고 나서 쓰레기를 주워봐야겠다, 나랑 잘 맞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환경 이슈가 요즘처럼 생활 속에서 부각될 때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일상 속 쓰레기 줍기부터 시작했어요. 너무 캐릭터가 없어서요. (웃음)


쓰줍남을 시작하면서 차근차근 포털의 환경 이슈 관련 카페도 가입하고, 오픈채팅방에 가입해 많은 분들의 노하우와 영상, 텍스트를 보면서 공부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쓰줍남'의 첫 영상이 공개됐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나가 무작정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점 쿠폰부터 종이컵, 플라스틱 생수통은 기본! 음식물 쓰레기도 눈에 띄었다.


image_1610297685913.jpg 플로깅은 Erik Ahlström(Sweden)이 2016년 조직한 단체 'Plogga' 에서 시작했다. 사진 출처: Adobe


별별 쓰레기를 다 봤을 것 같아요. 기억 나는 쓰레기가 있다면?


정말 다양한 쓰레기를 주워봤어요. 쓰줍남 콘텐츠를 위해 쓰레기를 주우러 전국을 다 돌거든요. 현재까지 제주, 강원, 광주, 창원, 통영, 부산, 대전 지역에서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역별로 쓰레기가 나오는 양상이 다 달라요. 예를 들어 대전의 모처에서는 바닥에 널린 유흥가 전단지를 잔뜩 주웠어요. 이런 곳에는 보통 명함, 전단지, 500 ml PT 생수통이 많습니다.


동해 해안가 둘레길에서는 경치 좋은 텃밭 같은 곳에 아령이 딱 놓여있더라고요. 아주 녹슨 버려진 아령이었죠. 만지면 쇠독 오를 것 같은 느낌? 강원도의 한 해변 주차장에는 버려진 양말이 많았습니다. 엄청 많았어요. 특히 해변가에 쓰레기가 많아요. 불꽃놀이 잔해들이나 여성 속옷, 강아지 변까지 별별 쓰레기를 다 치웠습니다.


직장가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플라스틱, 종이 재질 가릴 것 없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카페가 많은 거리도 마찬가지인데, 주로 카페가 직장가 근처에 자리할 때가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 음료수 통을 지하철 입구 난간 등에 올려놓으면 그 주변에 다른 누군가가 올려놓고 또 올려놓는 식으로요. 담배꽁초는 여기저기 전반적으로 많습니다.


심지어 부산의 어느 마을 폐가 안에는 자동차가 버려져 있더라고요.


집 안에 자동차가 버려져 있다고요?


네, 타이어부터 별별 자동차 부품이 다 있었습니다. 이 지역이 재건축×재개발 지역인데 길고 긴 투쟁을 하다가 떠난 분들이 많더라고요. 빈집이 많아요. 그 빈집에 별별 쓰레기가 가득해요.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쓰레기가 아니더라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을 적용할 수 있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구석진 골목에 보닛을 열어둔 두 차량을 주차시킨다. 한 대는 앞 유리창이 깨졌고, 다른 한 대는 멀쩡하다. 일주일 뒤.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앞 유리가 깨진 차는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각하게 파손돼 있었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발표한 깨진 유리창 이론은 우리가 일상 속 쓰레기들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다.


image_1610321383839.jpg 쓰레기가 무단 투기되어 있는 곳에선 자신도 모르게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진 출처: Adobe


주운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일단 일반 쓰레기는 제가 들고 가는 종량제 봉투에 가득 채우고요. 재활용 가능 쓰레기는 근처 분리수거하는 곳에 들고 가 분리배출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 버릴 데가 아예 없는 곳들도 많아요. 멀리까지 쓰레기를 옮겨야 하는데 그럴 땐 좀 곤란하죠. 쓰레기는 많은데 버릴 장소가 없을 때.


쓰레기 주울 때 시민들 반응은 어떤가요?


아주 칭찬바가지를 해주세요. "니 뭐하노", "어느 단체에서 왔노", "젊은 애가 고생한다"고 물어보거나 격려해주십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분들 만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어르신들 눈에는 젊은이가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 하니까 아무래도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신가봐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에게 쓰레기를 버리시죠. "이동식 쓰레기통이다"라면서요.


그렇군요. 쓰줍남 콘텐츠로 유튜브를 운영하신 건 10개월이 넘었어요. 쓰레기 줍는 콘텐츠를 한두 번 하고 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독보적인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요.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 특성상 남들과의 차별화를 늘 생각해요. 아이템을 무작위로 정해 이것저것 그때그때 보여주는 콘텐츠로는 차별화가 안 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콘텐츠는 저와 비슷한 방송인들 사이에서 독보적이었죠. 그래서 평소에는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줍고, 매주 1회 쓰줍남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사실 시작 후 4달~ 5달쯤 되니까 지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부터 주위에서 조금씩 관심을 보였습니다.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오고 컬래버레이션 제안도 들어오고요. 그래서 힘을 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쓰레기가 길거리에서 없어지는 끝까지 계속 하겠노라고. 영상 공모전에서도 저의 취지가 전달됐는지 최근 10개 정도 상도 받았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성과들도 제가 채널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습니다.


image_1610323208713.jpg 동혁 님은 '쓰레기 줍는 남자(이하 쓰줍남)' 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1년째 꾸준히 쓰레기 줍는 영상을 선보이는 중이다.


컬래버레이션 요청은 어디서 들어오는 건가요?


쓰레기 관련 단체에서 요청이 들어와요. 어디에서 쓰레기를 주워야 하냐고 문의하는 식이죠. 정기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많은데 자문도 해드리고 같이 나가 쓰레기도 주우면서 시너지를 냅니다. 다른 유튜버와 함께 쓰레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고요.


쓰줍남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온천지 쓰레기만 눈에 들어온다는 점? 주차할 때, 여행 갈 때 언제든 제 눈에는 먼저 쓰레기가 보입니다. 어디 나갈 때 텀블러 들고 다니는 것도 달라진 점이에요. 버릴 때 분리배출하는 것도 그렇고. 과거에는 막 사고 막 버렸어요. 지금은 비닐과 플라스틱이 없는 제품을 찾습니다.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이는 생활을 지향합니다. 밖에선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꾹 참죠. (웃음)


솔직히 쓰줍남 하면서 점점 더 큰 반응이 돌아오다 보니 겁도 나요. 부담도 되고요. 저는 그저 가볍게 쓰레기나 주워볼까? 하면서 시작한 건데 이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도 더 책임감을 느껴요. 더 공부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서울환경연합에서 제공하는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 영상을 다 챙겨봤어요. 그냥 쓰레기만 줍다 보니 이걸 어떻게 분리배출해서 버려야 할지 몰랐거든요. 쓰레기 박사 홍수열 님을 통해 그런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시더라고요. 쓰레기 문맹 탈출을 돕는 쓰레기 해설가이자 쓰레기 통역가로 알려진 분입니다.


아무래도 쓰레기 관련한 영상이나 책을 더 찾아보시겠어요?


네 맞아요. 다른 유튜버 중에서는 '금자의 쓰레기덕질' 채널을 주로 봐요. 이 분도 제가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됐는데요.


주로 다큐멘터리에서 소스를 얻으시네요. (웃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웃음) 어쨌든 이 분은 제가 느끼기에 뭐랄까 제로웨이스트의 끝판왕이랄까요. 아예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더라고요. 덜 쓰고 덜 버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관련해서 읽었던 책도 있을까요?


책은 아까 말씀드린 홍수열 소장님의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를 최근 읽었는데 좋더라고요. 조금 더 쉽게 쓰레기 관련 문제를 배우기에는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를 추천합니다. 저처럼 환경 문제에 대해 아예 몰랐던 초보들이 입문하기에 좋아요. 청소년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서 더 쉽고, 내용은 중요한 게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팍 들게 해줍니다.

image_1610322520256.jpg 우리가 알고 있었던 분리배출의 진실, 재활용 제품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재활용이 안되는 제품등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사진 출처: yes24


쓰줍남 하면서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한다고 들었어요. 이유가 있나요? 책을 읽으려고?


그건 아니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 한 아침 7시나 8시부터 활동을 시작해요. 그 시각에 가야 환경 미화원 선생님들을 덜 만나거나 안 만날 수 있거든요.


그 분들을 안 만나는 게 좋나요?


그래야 쓰레기를 주울 수 있어서요. 저도 쓰레기 줍는 스토리를 영상에 담아야 하는데 미화원 분들이 쓰레기를 다 치우시면 영상에 담을 내용도 없어지거든요. (웃음)


전혀 생각 못했어요.


네, 또다른 경쟁자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어르신들! 요즘에는 각 지자체별로 어르신일자리 제공이나 사회 활동 지원 사업이 활발해요. 그 중에서 환경 정화 사업하시는 어르신들이 부산의 경우 각 구 별로 쫙 포진돼 있으세요. 한 아침 9시쯤 나오시더라고요. 부산에서는 쓰레기 줍기 경쟁이 치열합니다. (웃음)


그러네요. 와, 어르신들과 쓰레기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요. 어르신들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 사업이네요.


부산시는 당해연도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지원한다. 그 중에서도 공공시설봉사 부문 ‘지역사회 환경개선 봉사’가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주거 환경, 생태 환경 정화 업무다.


동혁 님이나 어르신들처럼 환경을 정화하는 일상 속 노력들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2015년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소비량이** 전 세계 2위더라고요. 온 나라가 쓰레기로 신음 중인 '플라스틱 공화국'에서 쓰줍남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렇게 막 대단한 의미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게 1년 전과 좀 다르긴 해요. 1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쓰레기 관련 이야기나 환경 뉴스를 지금처럼 자주 접하진 않았거든요. 요즘엔 하루에 한 번 이상 접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환경에 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특별히 어려운 점은?


게으름과의 싸움인 거 같아요. 자신과의 싸움이죠. 부지런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쓰줍남의 향후 목표도 알려주세요.


여행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콘텐츠를 더 개발하고 싶어요. 환경에 관한 인식을 일깨우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컬래버레이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단체와 소통해서 연대 활동을 이어가는 게 목표입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계속 노력을 하고 몸이 허락할 때까진 쓰레기를 주울 예정입니다. 여자친구도 데이트 하러 갔다가 "쓰레기 잘 줍고 온나" 하면서 제 일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니 힘이 납니다.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나에게 보호란?


실천이다! 말만 한다고 해서 신념을 지키는 게 아니잖아요. 평범남이었던 제게 쓰줍남이라는 콘셉트가 생긴 뒤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 주울까?' 뭘 살 때도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걸까?'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그 생각들을 실천하는 거죠. 실천한 뒤 느껴지는 보람이야말로 '내가 환경을 보호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Boho works Magazine Team

Editor Jeong


*KBS 1TV는 2019년 7월과 9월 '플라스틱 대한민국 불타는 쓰레기 산', '플라스틱 섬을 찾아서'를 각각 방송했다. 그 중 '플라스틱 지구'는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제로 플라스틱 운동'이라는 국내외 큰 흐름을 취재했다.

**2016년 10월 유럽플라스틱및고무기계협회(EUROMAP), <세계 63개국의 포장용 플라스틱 생산량 및 소비량 조사 보고서(EUROMAP <Plastics Resin Production and Consumption in 63 Countries Worldwi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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