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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호자들

내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보호자들 Ep.06 회사원 이소영 님

by 정병진

Editor's intro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피곤했던 몸이 달라졌다. 건강해졌다. 날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좋아 예전의 식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소영 님을 만났다. 그녀는 1년 반 넘게 비건(vegan)*을 지향하고 있다. 동물권이나 환경 이슈를 차치하더라도 지금의 이 가뿐한 라이프 스타일을 잃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image_1609721937957_1000.jpg 소영 씨와 짱구. 짱구를 구조한 뒤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다.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달라진 건 무엇인가요?


채식으로 밥을 먹다보니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아졌어요. 컨디션이 좋아요.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고요. 이전에는 하루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건강하게 먹기 시작하면서 활력이 넘치고 빈혈도 사라졌죠.


심지어 다이어트 효과까지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력해서 살을 빼야했지만 지금은 다이어트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살이 잘 찌지 않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도 좋게 나왔더라고요.


물론 채식이, 나아가 비건식이 모든 사람에게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져선 곤란하다. 어린이의 경우 칼슘이 부족해 골연화증에 걸리거나 단백질, 철분 또는 비타민D 결핍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저 같은 경우 100% 비건식으로 먹진 않아요. 집에서는 100% 채식을 하지만 밖에서는 유연하게 해요. 육고기는 원칙적으로 안 먹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상황에 따라 소량의 달걀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해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주는 거죠. 고깃집에서 된장찌개나 냉면을 먹을 때도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소영 씨의 채식 스타일을 정리하면 비건 채식을 지향하지만 경우에 따라 부분적인 오보 채식을 병행하는 식이다. 채식주의는 크게 베지테리언(Vegetarian)과 세미 베지테리언(Semi Vegetarian)으로 나눈다. 그 중에서도 베지테리언은 비건(Vegan), 락토(LActo), 오보(Ovo), 락토오보(Lacto-Ovo)로 나눈다. 락토는 우유나 유제품을 허용하는 수준의 채식이다. 오보는 달걀 같은 조류의 알을 허용한다. 이 둘을 합치면 락토오보다.


그런데 비건은 비단 채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 ‘생명’이 있다.


어릴적부터 동물을 좋아했어요. 길에서 고양이나 강아지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죠. 예쁘잖아요. 새, 오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짱구라는 강아지를 구조했어요. 짱구는 개장수에게 팔릴 운명에 처했었죠. 저희 가족이 감사하게도 짱구를 구했습니다. 이후에 개 식용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우리에게는 소중한 가족인데, 누군가에겐 한 끼 식사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소름끼치고 무서운 거에요. 강아지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어엿한 반려동물로 자릴 잡았는데, 어디에선가는 얘네들이 식용으로 죽어가고 있는 거잖아요?


image_1609722836605_1000.jpg 짱구와 함께 사는 소영씨의 또다른 가족. 모리와 하양이. 사진 제공: 이소영 님


고민 끝에 개 식용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묘한 경험을 했어요. 개고기를 팔고 있는 골목에서 시위를 했는데, 강아지가 아닌 닭이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닭장 안에 닭 여러 마리가 꽉꽉 눌린 채 도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저는 맨날 닭고기를 먹고 닭요리를 일상에서 편하게 접하는데 어른이 된 이후 제가 살아있는 닭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거에요. 기분이 이상해서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동물을 먹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민하셨나요?


고민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남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동물권, 철학 서적을 탐독하다가 공장식 축산에 관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image_1609723079901_1000.jpg 소영 씨가 추천하는 책_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사진 제공: 이소영 님


제 생각보다 공장식 축산이 너무 끔찍한 거에요. 대부분 동물이 지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에서 축산이 이뤄지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도살이 진행되고 있었더라고요. ‘나라도 (고기를) 안 먹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불완전하게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주위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사람들 시선이 때로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왜 고기를 안 먹어?”라고 누가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 게 없어도 저 스스로 ‘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괜히 신경 쓰일 때가 있었죠.


하지만 내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내 소신을 지키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불편은 따를 수밖에 없겠죠. 그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은 훨씬 편안해요.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제가 매번 제 신념을 다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아요. 분위기를 고려해서 할 만 하다 싶으면 얘기하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면 굳이 이야기 하지 않죠. 가령,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동료 앞에서 “그런데 고기를 먹는 건 이러이러한 이슈와 관련이 있어요” 이렇게 말한다면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전에 그 사람은 방어 심리를 갖게 되죠. 그래서 제 생각에 귀를 기울이기 보단 그 만남 자체의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게 되죠. 저는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반면 편안한 상황, 이를테면 상대방이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 소영 씨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노력한다. 자신의 신념이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하는 그녀였다.


가족들은 어떠신가요?


음.. 남편과 부모님은 아직 비건을 지향하지 않아요. 그런데 제 생각에 대해 다들 존중해줘요. 같이 밥을 먹을 때도 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저를 배려해주시는 편이에요.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면 배려를 할 수 있는 거죠. 가족들이 제가 왜 비건을 지향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제 마음을 잘 헤아리고 계시기 때문에 저를 배려해주시는 거죠. 이성적으로 누가 옳은지 그른지만 따져들다 보면 논쟁으로 번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 네가 동물을 사랑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제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사람들과는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것 같아요.


image_1609723267462_1000.jpg 가족들도 소영 씨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준다. 함께 비건 음식을 찾아 먹고 정보를 공유한다. 사진 제공: 이소영 님


그럼에도 단백질은 어떻게 보충하느냐, 비건도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되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을 집요하게 되묻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으신가요?


네 있죠. 그럴 땐 이렇게 해요. 꼭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을 논리로 이겨야겠다, 이 사람이 틀렸다는 점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거죠. 대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묻는 건지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내가 고기를 안 먹어서 그 사실이 불편해 나한테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걸까?', '내가 혹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죠.


만약 가족이 이런 질문을 해온다면 그건 걱정일 가능성이 높아요. 나는 내 딸이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고기도 좀 먹고 해야 건강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소영아 너 그렇게 하면 아파. 고기도 좀 먹어야 해"라고 하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 때 "아빠의 말은 틀렸어" 라며 조목조목 반박하려 든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그저 '아빠가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그 발화의 원인을 헤아린 뒤 그 걱정을 안심시켜드리면 되는 거에요.


비거니즘 또한 종국엔 환경을 보호하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소영 님도 생활 속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실천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대체로 작은 것들이죠. 우선 소비 패턴을 바꿨습니다. 과거엔 신상 나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제품을 구매했어요. 꼭 필요한 물건인지, 환경에 부담을 주진 않는지 등을 고려하지 않았죠. 이제는 소비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플라스틱은 아예 안 쓰기 어렵더라고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어렵지만 레스웨이스트(less waste)는 해보자, 남편과 이렇게 의기투합했습니다. 두세 번 쓸 거 한 번 쓰는 식이죠. 텀블러는 습관이 되면 쉬워요. 다회용 도시락통에 점심 식사를 싸서 출근하는 것도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동물권, 비건 개념은 자연스레 환경 오염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에 더해 국민보건, 소비자 권리와도 직결됩니다. 국민 보건은 비건이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련 깊어요. 소비자 권리는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의 출처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따져볼 수 있는 알권리와도 연결됩니다. 내가 구매하는 음식이 인류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는가, 이 알권리가 당연히 소비자 권리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환경 오염 문제는 무엇인가요?


기후변화 문제요. 너무 가속화되고 있어서요. 이 문제를 되돌리기 어려운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저는 자녀가 없음에도 다음 세대가 걱정되는데, 자식이 있다면 더 그럴 것 같아요. 맑은 공기, 초원을 경험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비건, 환경 문제와 관련해 독자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기후변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환경운동가 폴 호건과 동료들이 지구 온난화를 되돌리기 위해 실질적인 솔루션 100가지를 정립했어요. 이들의 책 '플랜 드로다운'을 보면 온실가스 감축에 유익한 대안들이 순위별로 정리돼 있는데요.


채식 식단은 4위였어요. 1위는 냉매 관리, 2위는 풍력 발전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가 뒤를 이었습니다. 3위와 4위가 식생활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때문에 기후변화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채식 위주의 식단을 외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강력한 솔루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담론으로 다뤄지거나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고려될 필요성을 느낍니다.


'따뜻한 식사'라는 책도 추천합니다. 강하라 심채윤 부부 작가가 함께 쓴 책인데요. 지속가능한 식사란 무엇인가, 어떻게 먹어야 우리가 더 건강하면서도 행복하게 음식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에요. 친절하고 다정하게 책을 풀어가서 좋아요. 읽다보면 되게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혼나는 느낌이 안 들어서 좋아요. (웃음) 식재료를 친환경으로 생산하시는 농부들의 이야기, 레시피와 곁들인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무엇보다 실용적이에요.


image_1609725394948_1000.jpg 소영 씨는 책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다. 사진 제공: 이소영 님


환경을 생각해서 비거니즘을 실천해보려는 분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요. 환경운동에 적극 나서는 영국 작가인데 이런 말을 했어요.


비건이 된다는 건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비건을 처음으로 지향하기 시작했을 때 이 말을 자주 곱씹었어요. 사람은 계속 타자화합니다. 우리와 저들을 구분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죠. 동물조차 반려동물과 그 외 동물을 구분짓기 합니다.


하지만 모든 동물은 공히 고통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아, 이런 생각이 무서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서 타자화가 심해질수록 그 화살이 내 가족, 나, 내 반려동물에게도 꽂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권은 그래서 인권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동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더 안전한 사회가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거니즘은 동물권, 인권과 밀접하게 결부된 개념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나에게 보호란?


삶의 확장. 내가 걱정하고 위하는 대상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저희집 반려견 짱구를 사랑했는데 다른 강아지들의 삶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자꾸 밟혀요. '불행한 강아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렇게 마음이 확장되는 개념이 보호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 주위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 마음과 에너지를 두루 쏟고자 노력하는 소영 님의 삶은 보호웍스의 가치와 맞닿아 있었다. 소영 씨 같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명의 보호자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더 자주 발견할 수 있길 바라본다.


https://www.bohoworks.com/blogPost/untitled-9


Boho works Magazine Team

Editor Jeong



* 비건: 1944년 영국의 도널드 왓슨이 설립한 비건 소사이어티(vegan society) 자료에 따르면 비건은 이념이자 철학이다. 음식을 비롯해 의복 또는 여타의 다른 목적을 위해 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행위를 반대한다. 동물과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잘 어우러지길 추구하면서 동물이 사용되지 않은 대안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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