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는 말, 어느 나라 언어야?"

by 정병진

"네가 하는 말, 어느 나라 언어야?"


마케팅 부서 동료가 어느 날 물었다. 행여나 내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전화 통화하는 걸 오가다 자주 들었고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어라고 알려주니 꼬리 질문이 이어졌다. "거짓말 안 하고, 소리나 리듬이 특이하고 예뻐서 그래" 여기까진 뭐 예의상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은 짐짓 뇌리에 와닿았다.


"그럼 한국어는 너희 고유의 언어야?"


영어나 스페인어를 차용하는 나라들을 생각해 보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그 나라만의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는 설명이었다. 누군가는 그게 신기할 수 있구나, 싶었다. 한자에서 비롯된 어휘들이 많지만, 한글 자체는 세종대왕이라는 분이 창제해 문맹률을 낮췄다느니 뭐 그런 말들을 어설픈 영어로 덧붙였다.

우리 고유의 것이 먹힌다.


독일이라는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 문화를 스치듯 발견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가장 한국스러운 게 세계적'이라는 클리셰 같은 말이 얘기치 않은 순간 훅 와닿는다.


아까는 설거지 하다가 북독일방송 2라디오에서 갑자기 한국어가 흘러나와 깜짝 놀랐다. 세계적 브릿팝 밴드 콜드플레이가 BTS와 협업한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였다. 노래 중간중간 한국어가 꽤 나온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일 라디오 듣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글을 듣는 순간, 국뽕까진 아닌데 그 뭐랄까 '한국적인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소구되는 게 맞구나' 옅은 진리를 깨닫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은 어떠한가.


아시아팀 직원들과 밥을 먹는데 "오징어 게임 봤어? 요즘 그 슈거 크레커가 아주 인기던데" 하면서 말레이시아 출신 동료가 인도에서 온 동료에게 자연스럽게 '뽑기'를 대화 소재로 삼았다. 나한테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다. 잘 연출된 작품 속 한국적 소재가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광경은 더러 내 흥미도 자아냈다.





이미 넷플릭스에서 한국은 넷플릭스 단독 콘텐츠를 제작하는 신흥 강국의 자리를 꿰찼다. 스태티스타 그래프를 보면 2019년 'K 좀비', '갓'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킹덤' 이후 넷플릭스에서 한국 단독 콘텐츠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 국내 지상파에 방영된 드라마보다 실험적이면서도 글로벌 넷플릭스 유저를 타겟팅한 기획 콘텐츠가 본격 양산되기 시작했다. 영화와 드라마, 그 어딘가의 형태적 경계에 한국적 요소들을 배치하니 수요가 폭발했다. '스위트홈',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인, 한국 문화, 한국어에 관심 갖는 게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우리 것'을 즐기면서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콜드플레이 & BTS 노래 가사처럼 K 콘텐츠가 앞으로 더 흥하길.


"너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밝게만 빛나줘 우리는 너를 따라 이 긴 밤을 수놓을 거야 너와 함께 날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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