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조직에서 나를 지키는 법

by 정병진

아끼는 아나운서 후배와 오랜만에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자연스레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는 좀 어때? 아직도 프리랜서들 막 함부로 대하고 그러니?"

비슷하죠 뭐. (웃음) 함부로는 아니지만, '반 함부로'...정도? ㅎ


쇠하는 조직에는 희망이 없고 희망고문 만이 있다. 내가 경험한 방송국들은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속으론 약자를 향한 유무언의 압박이 드글드글했다. 특히 '정의'를 몸 던져 외치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정의는 주로 대외적으로만 작용했고, 대내적으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쇠하는 조직들은 한결 같이 돈이 없거나,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없었다. 성과를 냈으면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고, 실력과 평판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처우를 개선해주는 시스템이란 게 부재하다.


방송계 뿐만이 아니다.


"저 점심 시간에 30분 더 일해서 오늘 분량 다 처리했어요. 15분 일찍 퇴근해 병원 좀 가도 될까요?"
-반차 내세요


이 한국 회사는 고작 15분 때문에 한 원의 근속의지를 완벽히 꺾어버렸다. 왜들 그럴까 정말!


그런 틈바구니로부터 빠져나와 독일 이민 생활을 시작한지 3년 반이 지났다. 그사이 자리 잡은 독일 직장에선 1년 반 만에 정규직 오퍼를 받았다. 10년을 방송가에서 일했지만 전혀 받아보지 못한 처우, 아니 예우였다. 내 성과가 희망고문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롯이 열매를 맺어 보너스로 날아들어오는 경험은 정말이지 진기하다. 이역만리 이국 땅에서 처음으로 실체가 있는 보상을 누리는 중이다. 연봉 인상, 승진 그리고 정규직. 뉴스로만 전했을 뿐, 정작 내겐 주어지지 않았던 그 애증의 보상을 이렇게 명료하게 받고 보니, 한켠 허탈한 건 왜 일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리 '안 되는' 리그에서 아등바등했는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넌 더 잘 될 거야. 성실하고 선한 사람의 성공을 나는 장담한다"


후배에게 건낸 진심이다. 후배가 그 스러져가는 조직에 휘둘리지 않고 하루빨리 눈을 돌리길 바란다. 한국 내에서도 분명 숨 쉴 구멍이 있다. 나는 그걸 다 놓치고 한국을 나와 독일에서 제로베이스로 다시 시작했다. 내 소중한 이들이 그 노력과 눈물로 빚은 성과의 값을 제대로 인정해주는 물에서 더 자유롭게 헤엄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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