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댕은 "유머는 남을 웃기는 기술이나 농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머는 한 사람의 세계관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내 세계관은 상당히 변모했다. 내가 더 이상 남을 깎아내리는 유머를 구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어릴적 유머 코드는 남 흉을 익살스레 들춰내기였다. 볼에 커다란 점을 가진 친구에게 무리들 앞에서 "야, 너는 점으로 볼링 쳐도 되겄다잉" 이러며 농을 툭 던지는 식이다. 친구들이 빵! 웃음을 터뜨리면 그게 참 뿌듯하고 고소했다. 또래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기분이랄까.
수업 시간에 만만한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선생님의 멘트를 중간중간 꼬투리 잡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거나 언어유희를 날려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곤 했다. 그때 아이들의 웃음이 비웃음 되어 그 선생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면목이 없다.
내가 나를 평가한다면, 겉으론 선하고 진중해 보이지만 속은 악하고 까불기 좋아하는, 다소간 표리부동한 위인이다.
내 유머가 박살난 이유
그런 내 유머를 유일하게 박살낸 인물이 바로 지금 내 아내다. 절대 남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입에 담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그녀는 연애할 때부터 내가 농담조로 건내는 말 한 마디 속에 얼마나 공고한 무례와 저급한 심리가 깔려 있는지 직시하라고 역설했다. 호랑이띠 아내가 소띠 남편에게 불호령을 내리면 그게 상당히 무섭다. 차츰 내 유머 코드는 비활성화 모드로 전환됐다.
남을 깎아내리는 유머 멘트가 떠오를 때면 나는 이제 내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누군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며 틈을 보일라치면 "나는 여자친구의 3백만 원짜리 맥북을 지하철 1호선에 두고 내렸지 뭡니까", 그럼에도 아내가 날 걷어차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이다. 듣는 이는 적당한 온도로 웃어준다. 나도 그게 부담 없고 편안하다.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바뀐다는데, 나는 세계관이 바뀐 듯 하다. 적어도 나는 지금, 내가 남을 낮잡아보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속에 피어나는 죄책감 없는 웃음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