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외에 다른 신 섬기지 말라고, 왜?

by 정병진

한국을 떠나기로 한 그 해 여름이었다. 딸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 전북 고창군의 농원을 여행했다. 분위기는 여유로웠고 사람은 제법 많았다. 사건(?)은 훅 들어온 어퍼컷 한 방처럼 순식간에 발생했다.


세살 아들 녀석이 "아빠!" 하면서 웬 다른 아저씨 뒤꽁무니를 좇아 쪼르르 달려갔다. 우리 일행은 일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저씨의 뒤태가 제법 내 뒷모습과 흡사했다. 아들이 헷갈릴 법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짧은 생각 하나가 2초가량 내 뒷통수를 스쳤다. '하나님도 내가 다른 신을 아빠! 하며 좇으면 이렇게 어이 없으실까?'


모태 신앙인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가장 이해가 안 됐던 점은 십계명 제1계명이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아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뭐가 아쉽기에 저렇게 '넌 나만 바라봐' 하실까. 저 태양도 저 은하, 아니 온 우주가 하나님의 것인데 왜 일개 미물인 나보고 자기만 섬기라 하실까. 욕심 많은 스쿠르지 할아버지 심보인가. 그런 생각을 수 없이 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다른 이를 보고 제 부모인 줄 알고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짐짓 하나님의 저 말씀도 일견 수긍이 갔다. 우리 딸이 엉뚱한 아저씨한테 가서 아빠! 이러고 있으면 속 뒤집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특히 돈에 눌릴 때 그러하다. 버는 족족 통장에 찍힌 돈은 사라지고, 늘지 않는 수입이 원망스러운데 하필 갑작스런 경조사가 생겨 사람 구실 하나 마음 편하게 못 할 때면 악에 받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돈, 돈, 돈! 그 한 글자에 내 온 우주가 매몰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돈에 휘둘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부자를 우러러 보게 된다. 부럽다. 돈이 많아서 내 앞에 놓인 비용 청구서들을 일거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뇌까리게 된다. 상환일이 다가오는 대출 원리금과 카드빚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이런 심리적 토양은 물질이 신으로 군림하기에 비옥한 토지다. '단군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라는 표현이 널리 회자된다. 자동수익 파이프라인(돈 줄기)을 완성하고, 이른 나이에 퇴직해 자유로운 삶을 누린다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2030의 시대정신이 됐다. 나도 돈을 부단히 벌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돈을 내 부모처럼 바라보며 '아빠! 엄마!'찾듯 갈구한다.


그럴 때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떠올린다. 떠올림에 그치지 않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뗀다. 교회에 십일조 명목으로 내거나 터키-시리아 지진 같은 대참사의 구호를 위해 기부한다. '돈은 내 부모가 아니다, 내 신이 아니다'라고 선포하는 셈이다. 부자들도 절세, 멘탈 케어, 여러 목적으로 엄청난 기부를 하는데 나라고 못 할 쏘냐 싶다. 십일조라도 내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돈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다. 신기하다.


심지어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떼어 드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내게 십분의 구를 베푸셨다고 느껴진다. 마음이 편안을 지나 평안에 다다르는 첩경이다. 이윽고 한동안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


일체유심조. 나의 아버지를 누구로 삼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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