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한국에 다녀온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내와 함께 진행하는 일이 있는데, 돈이 걸린 이슈를 내 단독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내가 애매하게 아는 지식으로 잘못 대응했다는 점을 아내가 알게 됐다. 내 딴에는 아내 걱정 안 끼치고 나름대로 잘 대응했다고 생각한 일이다. 하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그저 어설픈 자가발전이었다.
"당신, 아버님이랑 똑같아. 이번에 어머님 만났을 때 그러시더라"
-늬 아부지(내 친부)도 사고 다 치고 나면야, 그제사 나한티 말하는 겨. 빚이 막 3억 이렇게 늘어나고 난 뒤에야 말여.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내가 영리적 목적의 활동을 하거나 중요한 조건을 확인해 계약을 맺을 때 애매하게 아는 상태에서 아내와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처리했다가 후회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와 단 한 번만 크로스체크 했더라면, 혹은 아내가 조심하자고 말할 때 주의 깊게 들었다면 피했을 화였다.
"당신 말이 맞네"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자괴감이 들어 자책하다 보면 '당신, 아버님이랑 똑같다'는 아내의 말이 살처럼 가슴팍에 꽂혀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의 뇌에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있다. 1996년 거울뉴런이란 표현을 논문에 처음 사용한 지아코모 니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에 따르면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 모방하게 만든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마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는 설명이다.
아버지와 적어도 17년을 한 집에서 살았으니 아버지가 중요한 결정을 단독으로 내려 헛발질(?) 해오셨던 모습을 어쩌면 나도 내 모습인양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가르쳐주지도 않은 내 은밀한 버릇을 우리 딸이나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똑같이 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은 어쩌면 '거울뉴런은 못 속인다'는 말로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본질은 잘 바뀌지 않는다. 다만, 선택과 결정에 있어 신뢰하는 사람과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기꺼이 내 생각을 잠시 유보해봄직 하다. 내 본질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애매하게 아는 사안일수록 나의 부족함을 떠올리며 잠시 호흡을 고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묻는 것이다.
"여보, 잠깐 이것 좀 봐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