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월 2일이 되면 슬슬 보행로를 점령하는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우뚝 솟은 척추에 기다란 촉수를 겹겹이 뻗친 녀석들인데요. 생뚱맞은 자리에 휑뎅그렁하게 누워있어 그 옆을 지나가다 자칫 잘못하면 뾰족한 가시에 찔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동물원으로 옮겨가 초식 동물들의 겨울 별미로 제공되는데요.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버려져 있어요.
보통 각 가정마다 12월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입합니다. 전나무나 구상나무를 주로 집에 들여놓습니다. 형형색색의 오너먼트로 장식하고 그 주위에 가족들 선물을 한아름 쌓아두면 멋드러진 독일식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독일은 크리스마스가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큰 명절입니다. 이에 가족들이 한 데 모여 크리스마스 전후부터 1월 1일까지 쭉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1월 2일이 되면 가족 파티 분위기를 한껏 드높여줬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벌거벗겨집니다. 그러곤 곧장 길 곳곳에 버려집니다. 때가 되면 쓰레기 수거 차량이 와서 분리수거 해가듯, 각 지자체별로 나무 수거팀이 가동돼 일일이 나무를 수거해 갑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인조나무가 아닌 생나무로 장식하기 때문에 바이오 쓰레기로 분리수거해서 가져가는 것입니다.
제목에 거창하게 생명체라고 쓰긴 했지만, 그냥 생목, 식물이죠. 우리에겐 더이상 쓸모 없어졌지만 이 나무들을 두 팔 벌려 환대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입니다.
우와 알록달록 먹잇감이다! 제공: 베를린 동물원
사실 가정에서 내놓은 모든 나무가 동물원으로 가는 건 아닙니다. 나무에 걸어두었던 오너먼트로부터 화학물질이 묻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요. 트리를 팔던 상인들이 남는 나무를 동물원에 기증하는 게 매년 이맘때 독일의 관례입니다.
푸르른 Tannenbaum(전나무)들이 각 가정의 행복도를 한껏 올려주곤 연탄재처럼 끝까지 혼신을 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을 걷다가 버려진 크리스마스 트리 가지가 다리에 걸리더라도 발로 걷어차지 않고 안 쪽으로 잘 여미어 주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