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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Feb 19. 2024

아들4

타작

AI 제작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곡물을 도구로 후려쳐 알곡을 떨어내는 작업이 타작입니다. 사람을 몽둥이로 때리면 알곡이 아닌 통곡이 나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그랬습니다. 손바닥과 대걸레 자루, 죽도나 당구채 혹은 야구방망이, 싸리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나 각목으로 학생들을 타작 했습니다. 구타죠.


중학교 1학년 여름이었습니다. 방학 전이었는데, 수학 시간에 급우 한 녀석이 '곰팽이(수학 교사의 별명)' 선생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 녀석도 건방졌습니다. 앞뒤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맞을 짓을 하긴 했습니다. 곰팽이 선생님은 결국 폭발했습니다. 드럼 스틱보단 10센티미터 정도 길고 색깔이 거무튀튀했던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아 머리 뒤로 힘껏 들어올렸다가 녀석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흡사 검도 대련에서 한 선수가 상대의 머리를 "머리! 머리!" 하며 가격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녀석은 타작 세례를 팔로 막다가 점점 뒷걸음질 치기 시작 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맞지 않고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나셨는지 곰팽이 선생님은 더 빠른 속도로 '디스 베이비, 디스 베이비!'를 한국어로 외치며 타작에 가속을 붙였습니다. 둘은 복도로 나갔고, 우린 모두 고개를 문 밖으로 내밀어 그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각 선생님 별로 아이들을 타작하는 방식이 달랐는데, 저 교사는 저런 방식으로 때리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반에서 수업하던 과학 선생님이 뛰어나와 곰 선생님을 말리면서 사태는 종결됐습니다.




타작은 학생의 고통을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이뤄졌습니다.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머리를 맞는 건 에피타이저입니다. 본 메뉴는 역시 "엎드려 뻗쳐"입니다. 바닥에 푸쉬업 자세로 엎드리거나 칠판의 분필대를 붙잡고 비스듬히 엉덩이를 내미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엉덩이살이 둥툭한 엉덩이에 직접 맞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허벅지 뒤편 햄스트링 부위나 엉덩이 와 햄스트링 사이 경계선을 가격 당하면 엎드린 자세가 무너지기 일쑤였습니다. 중학교 레슬링부 녀석이 교실에서 200대를 맞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진 몸일지라도 허벅지 뒤편을 100대 이상 맞으니 후덜거려서 버티질 못하더군요.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허벅지 앞쪽을 회초리로 타작하거나 발바닥, 손등을 몽둥이로 찜질할 경우 학생들의 고통은 또다른 차원에서 극대화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까' 연구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별별 타작 기술들입니다. 이런 교육 환경이라면 고문 기술자 이근안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죠. 85년생들이 학교 다닐 때가 이 수준인데 그 보다 20여년 전 학창 시절을 겪은 분들은 말 다했죠 뭐.


아픈 건 아픈 건데, 기분이 정말 나쁜 건 아무래도 손바닥 따귀 아닌가 싶습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따귀는 살면서 총 3번 맞아봤는데, 그 중 두 번을 학교 교사에게 맞았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입학 후 저는 학급 반장이 됐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교장 선생님 앞에 사열해야 하는 조회를 했습니다. 반 아이들은 2열 종대로 쭉 도열했습니다. 저는 맨 앞 친구보다 한 걸음 더 앞에 섭니다. 반장들은 모두 그 위치에 섰습니다. 담임 교사들은 맞은 편에서 반 아이들을 쳐다보고 서지요.


교장 선생님의 훌륭한 말씀이 이어지고 박수를 중간중간 열심히 쳐야 했습니다. 우리가 뭐 북한 사람들도 아니고 저는 박수라도 좀 재밌게 쳐보고 싶은 마음에 손뼉을 몸 앞 뒤로 쳤습니다. 복부 앞에서 짝, 등 뒤에서 짝 손뼉을 치는 식으로 팔을 휘저어가며 쳤습니다. 나름대로 성의껏 쳤기에 손뼉 소리도 컸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교실에 돌아온 뒤 담임 선생님이 저를 교실 앞 교사 자리로 불렀습니다. 저는 박수를 열심히 친 제게 칭찬을 하시려나 보다, 싶어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키카 크고 깡마른 체구에 머리는 '둘리'의 마이콜 스타일, 생김새는 H.O.T의 장우혁을 어설프게 닮았던 그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오른손으로 제 왼뺨에 풀스윙 타작을 날리셨습니다. 몸이 휘청였고, 순간 넘어지지 않으려 중심을 잡았던 기억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2 때는 체육 선생님께 따귀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인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날은 왠지 더욱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대'라는 별명을 가진 체육 선생님이 이론 수업을 위해 교실로 입장했습니다. 중2 때 역시 반장이었던 저는 "차렷, 선생님께 경례!" 구령을 걸었고, 힘차게 "안녕하십니까!"를 발사했습니다. 당시 그 교사는 조폭 중간 보스였는데, 마음 잡고 학교 교사가 됐다는 풍문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싸움 잘하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저는 옅은 존경심까지 담아 힘차게 인사를 건넨 터였습니다.


"반장.(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하심)"


'아, 칭찬하시려나 보다' 역시 생글생글 웃으며 교탁으로 나아갔고 이내 둔중한 풀스윙이 제 왼뺨에 작렬했습니다.

 



타작이 개인 형벌이라면 기합은 단체 형벌입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는 유난히 독특한 기합 방법을 연마하신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시내 유일한 사립 중학교였는데, 선생님들이 수십년 간 바뀌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한 학교에서 다년 간 짐승 같은 남중 녀석들을 다뤄오신 짬밥 덕분인지 이분들께 창의적인 유형의 기합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앞서 제 따귀를 때린 박대 교사께선 학교 뒤 봉황산 등반이 메인입니다. 맨발로 봉황산 정상을 찍고 운동장으로 돌아오는 기합입니다. 빨리 찍고 돌아오면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발바닥은 어느 정도 훼손됩니다. 오토바이 자세, 지금으로 치면 스쿼트 자세를 잡게 하실 때도 잦았습니다.


윤리 선생님 역시 봉황산을 이용하셨는데, 협동이 중요했습니다.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돌을 가득 채운 뒤 이를 들고 산 정상을 찍고 오는 기합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디스크가 터지면서 이 기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특히 윤리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싸움박질을 하면 반 전체에 연좌제를 적용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퍽 엽기적입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야외 화장실로 갑니다.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소위 '푸세식' 화장실이죠. 이 화장실은 소변기가 그냥 벽이었습니다. 개별 소변기가 있는 게 아니라 벽에다 소변을 갈기는 방식입니다. 물을 내리는 시스템이 없을 때 지어진 화장실이거든요. 배수구만 있습니다. 드라마 '소년시대'에 비슷한 화장실이 나오던데, 그 화장실은 소변기가 스태인리스로 뒤덮여 있더군요. 고증이 살짝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여튼 그 화장실 소변기 벽에는 누런 소변 때 덩어리가 퇴적돼 있습니다. 마치 종유석처럼 일정한 패턴을 지녔죠. 세월의 더깨가 누렇게 내려앉은 시쿰한 비주얼입니다. 그래서 이 화장실에 들어서면 코가 문제가 아니라 눈이 따가웠습니다. 암모니아 가스 같은 게 눈을 찔렀습니다


윤리 선생님은 먼저 때린 녀석에겐 요플레 숟가락을, 맞고 반격한 녀석에겐 일반 숟가락을 줬습니다. 열중쉬엇 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바닥에 앞으로 눕습니다. 이미 찝찝함 그 잡채입니다. 두 녀석은 숟가락을 입으로 뭅니다. 요플레 숟가락과 일반 숟가락은 이제 연신 소변기 벽면에 낀 누런 덩어리를 위아래로 긁어냅니다. 마치 고기가 팔딱팔딱 거리듯 두 녀석은 열심히 숟가락으로 소변벽을 긁어야 합니다. 긁을 때마다 숟가락으로 퍼낸 덩어리들이 코와 눈 주위로 튑니다. 싸움박질의 대가입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했을까요. 나머지 학생들이 푸세식 화장실 한 칸에 모두 들어갈 때까지 합니다. 1평 남짓한 그 재래식 화장실, 그러니까 아래가 뻥 뚫려서 뭐가 아래에 바다처럼 넘실대는지 다 보이는 그 화장실 한 칸에 40명 정도 되는 남자중학생들이 얽히고 설켜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기합을 받고나면 한 동안 그 반에서 싸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985년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을 겁니다. 어느 학교 학생이 교사의 타작 영상을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가 경찰에 신고를 했던가 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보도의 파장이 굉장히 컸습니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교사들의 타작 영상은 줄지어 보도됐고, 결국 중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타작하는 풍경은 학교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애초에 교사들의 교권은 타작으로 세울 게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이 교사의 가르침과 평가에 따라 학업 진로에 영향을 받고, 교사는 투명하면서도 명확한 기준, 여러 의견을 종합한 평가 방식으로 학생을 바라보고, 이 과정이 법으로 보호되며 고등학교 졸업이나 대학교 진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학생도, 학부모도 교권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런 경험을 이제 우리 학생들은 더 이상 하지 않겠죠? 느리지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바뀌어가 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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