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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만큼은 BTS 안 부러웠다

BTS가 소환한 추억

by 정병진



중1 때 김수용의 만화 <힙합>이 대히트 하면서 학교에 춤바람이 불어닥쳤다. 갓 브레이크댄스에 빠져든 나를 비롯한 중딩들은 청소 시간 교실에서, 틈만 나면 학교 채플 강당에서 춤을 췄다. 나는 뭐 거의 몸부림 수준이었지만 감이 빠른 친구들은 일취월장했다. 향후 '임폴스'라는 댄스팀을 만들어 대천(보령) 시내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열기까지 했다. 팬들이 많았다.

어쨌든 초창기에는 나도 '나이키'나 '원킥', '투킥'을 '꽂으며(춤 기술 성공했다는 은어)' 춤추는 멤버 중 하나로 암약했다. 영턱스클럽 임성은 씨가 반토마스를 공중파에서 성공시키며 'B-girl'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때였다. 물구나무 서서 도는 나인티 기술을 익히고 나아가 풍차처럼 도는 윈드밀까지 연습했는데 하체가 워낙 무거워(선천적 하체 비만)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다.


그나마 발차기 가속도를 활용할 수 있는 '쓰리킥'이 달성 가능한 목표였다. 한 팔로 땅을 지지하고 두 다리와 나머지 팔을 쭉 뻗어 올리는 기술이다. 그땐 쓰리킥 성공했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쉬는 시간 마다 "원킥, 투-킥, 쓰리 킥!" 연마했지만 쓰리킥은 역시 잘 꽂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천천변에 야시장이 섰고, 우리 학교의 라이벌 격인 대천중 형들과 '뚝방'에서 춤 배틀이 벌어졌다. 당시 '쇼다운'이라고도 불렀는데 각 편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번갈아가며 중앙으로 나와 춤 기술을 선보이는 대결이다.

처음에는 짝을 지어 락킹 댄스를 추며 분위기를 띄우고 웨이브나 각기 고수들이 현란한 춤사위를 펼친다. 각팀은 킥, 나이키나 세미, 동키즈 등 중간 난이도 동작도 선보이다가 토마스에서 윈드밀로, 화룡점정 헤드스핀까지 맞대결하는 구성이다. 저쪽에는 비장의 카드 에어트렉(팔을 땅에 딛고 도는 윈드밀) 기술 보유자가 있었고, 우리 쪽에선 머리 박고 빙빙 도는 헤드스핀 마스터가 파이널을 지켰다.

그날 나는 배틀 초반부 메인 스테이지 옆에서 킥을 선보였다. 이미 대천천 뚝방 사방에 여중생•여고생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B-girl로 찬조 공연(?) 비슷하게 참여한 여학생들 따라 같이 온 거다. 겁네 잘해야 하는 이유였다. 이리저리 주고받는 시선 속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당시 십몇년 인생 모든 집중력과 자신감을 긁어모아 기술에 들어갔다.


"원 킥, 투 킥, 쓰리 킥!!" 첫 성공이었다. 짧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물론 나에 대한 관심은 메인 스테이지로 금세 옮겨갔다. 그래도 뿌듯했다. 그날 이후 나의 춤 능력은 친구들보다 점점 더 뒤처졌고, 친구들을 응원하고 말로 바람 잡는 역할을 하게 됐지만 그 날의 밤공기와 여학생들의 시선, 꽂힐 때의 짜릿함이 여전히 마음 한켠을 넉넉히 채운다.

BTS가 세계적 춤사위와 노래를 선보이는 뉴스를 유독 많이 보도하는 요즘이다. 저들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전국 곳곳에서 나처럼 춤 좀 춰보겠다고 발악했던 사람들이 브레이크댄스 저변을 다져준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뭐 근거 없는 공상이겠지만 괜스레 대견한 느낌이 드는 남다른 뭔가가 있달까. 세계적 반열에 오르기까지 피땀 흘려 노력했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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