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현실
'엽기갑질' 양진호 회장은 돈으로 면죄부를 사려했다. 자기 대신 구속되면 3억, 재판 받아 집행유예 나오면 1억을 주겠다며 내부 직원을 종용한 거다. 전 부인 친구 교수는 불륜이 의심된다며 집단으로 폭행했는데, 양 회장은 매 맞은 값으로 200만 원을 던져줬다. 모욕을 느낀 교수는 그 돈을 갖고 있다가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는 세상에 살았던 양 회장은 최근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몇 억을 꺼내 툭툭 던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모 가수가 운영하는 클럽에서는 1억 원짜리 '만수르 세트'를 판다. '아르망 드 브리냑' 12L와 '루이 XIII', 아르망 드 브리냑 10병을 1억 원에 즐길 수 있는데, 만수르 세트가 팔리면 인터넷 매체가 심심찮게 소개할 정도다.
너무 사치 아닌가 싶지만 돈이 많아 사먹었을 뿐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일축하면 할 말 없다. 넉넉하면 1억어치 술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사회 한 구석에서는 돈 몇 푼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거나 아이를 내다 파는 일이 벌어진다. 밥벌이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거리의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루 8시간 기본 근로에 40주 넘도록 12시간 연장 근로하며 2년 반을 일하다 과로로 자살한 IT 기업 노동자 뉴스를 전하면서 양진호·만수르의 세상과 범부들의 실상이 몇 번이고 겹쳐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는지 오늘 증선위 결론이 나온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갑자기 1조 9천억 원의 흑자 회사로 탈바꿈했다. 배경이 뭘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승계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꼽힌다. 당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삼성그룹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키워 제일모직을 고평가 받도록 해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가 수월해지게끔 합병을 끌고 갔다는 정황이다. 범부들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복잡한 공정(?)이 회계 뻥튀기에 적용됐다.
삼성 산하 경제 싱크탱크에 몸 담았던 한 경제학자는 언젠가 내게 이 부회장 일가와 밥을 먹었던 기억을 되짚으며 "그들은 인간계가 아니라 신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개인 소견이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전하다 보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마냥 허구는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우리 사회는 신과 인간이 섞여 사는 그리스 신화 속 시대를 지내는 걸까. '양진호', '만수르', 혹은 2세 갑부 등 재물의 신이 노골적으로 사회를 휘젓고 다니는 실태는 필부필부들을 낙담케 만들고 시민 사회를 곪아버리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