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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Jan 12. 2019

자소서 없인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아요

토대부터 쌓으세요 2

자기소개서를 '자소설'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취업 준비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취업 준비에 나섰다간 수 차례 고배를 마시기 십상입니다. 30~40군데 지원서를 넣어 '복붙' 자소서로 최종 면접을 본다 한들 면접관들이 한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자소서부터 준비가 안 됐구나' 하는 인상만 보여줄 뿐입니다.


자소서는 지휘통제실


자기소개서는 모든 입사 전략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입사 과정에서 하게 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자소서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면접 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군더더기 행동도 줄일 수 있습니다. 군대에 비유하면, 자소서는 일종의 군대 지휘통제실 같은 곳입니다. 면접관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지휘하고, 실기 전형을 치를 때 불필요한 행동을 통제하는 컨트롤타워 말입니다.


심지어 논술이나 작문을 쓸 때도 자소서는 시험을 효율적으로 치르게 해줍니다. 자소서에는 내가 경험하거나 아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담아야 하기 때문인데요. 자소서 정리를 잘 해놓은 사람은 작문이나 논술을  작성할 때도 내가 뭘 알고 어떤 점을 모르는 지 분명히 압니다. 그런 지원자의 논작은 글감이 탄탄하고 읽을 때 힘이 느껴집니다. 자소서에 활용한 소재를 작문 같은 연성 글쓰기 시험에 활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자신을 분석하세요. 출처: pixabay

따라서 자소서는 매우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작성해놓으셔야 합니다. 그것도 체계적으로요. 없는 이야기, 경험하지 않은 가짜 글을 지어 '자소설' 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세요. 대충 글을 작성해 서류 마감을 몇 분 남겨두고 이력서 및 자소서를 제출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취업 성공 가능성을 높입니다.


글감과 회사를 조합하라


자소서를 작성하는 가장 커다란 접근법은 '키워드''회사 정보'의 조합입니다. 나를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담긴 키워드를 해당 회사의 인재상·니즈(needs)와 짝지어 주는 개념입니다.


여러분이 면접관이라면 지원자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몇 10분 간의 인터뷰로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지원자는 많고 면접 볼 시간은 제한돼 있습니다. 따라서 면접관은 지원자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 단 시간에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필요를 절실히 느끼겠죠?


면접관이 나를 손쉽게 파악하도록 지원자가 돕는 일이 바로 키워드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지원자가 나의 '어떤 특성'을 누구나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단어에 담아서 글과 말로 알려주면 됩니다.


위기대응, 리더십, 친화력, 창의력, 성실성, 인내력, 빠른 습득 능력, 비판력


최대한 한 단어로 떨어지게끔 자신의 '어떤 특성'을 '프레이밍'하는 작업입니다. 참고로 프레이밍이란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에도 잘 설명돼 있는데요. 쉽게 말하면 모든 걸 한 단어로 정리해버리는 작업입니다. 그 한 단어, 한 마디만 가지고도 전체를 알 수 있게끔 만드는 거죠. 이 단어를 어떻게 조탁하느냐에 따라 전달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전체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 자체에 참 큰 힘이 있거든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들었음에도 '코끼리'라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 코끼리의 모습을 저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치를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이러한 키워드를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키워드 하나당 에피소드 1개 이상씩 정리해둡니다. '리더십'이란 키워드에는 예를 들어 '축제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조직과 예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해 축제를 성공시킨 에피소드'를 달아놓습니다. '경청'이라는 키워드에는 '말벗 봉사를 하며 내가 말하기 보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정성껏 귀담아 들었다'는 에피소드를 정리해둡니다. 이런 식으로 나의 특성, 그게 장점이든 극복된 단점이든 가리지 않고 기록합니다. 내가 의식이 있을 때부터 오늘까지 겪은 삶을 쭉 돌아보며 에피소드를 찾고 키워드로 다듬습니다. 이런 키워드 정리 작업은 자소서, 아니 입사 준비의 가장 중요한 첫 단추입니다.

나란 사람 어떤 사람? 출처: pixabay


키워드 뽑는 법, SWOT


키워드는 SWOT 분석으로 뽑으세요. 가장 효율적입니다. SWOT 분석은 마케팅 용어입니다. 제품을 분석할 때 활용하는 틀거리인데요. 강점과 약점, 위기와 기회를 정리한 도표입니다. 여기서 강점과 약점은 해당 제품 내재적인 특성입니다. 제품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효율적인 자기 분석을 위해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위기와 기회는 제품 외재적인 요인입니다. 나(제품)의 의지능력과 별개로 발생한 이슈인데 내게 영향을 주는 요인들입니다.


수험생 시절, 제가 제 자신의 SWOT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0년 취업 준비생 시절 작성한 SWOT 분석입니다.

나만의 강점과 약점을 보여주는 키워드가 보이죠? 각 키워드 안에는 개별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경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2년 간 말벗 봉사를 했다. 독거 어르신은 구멍난 가슴으로 2시간 동안 같은 얘기를 반복하며 쏟아낸다. 다른 봉사자는 지치지만 나는 끝까지 눈을 마주치며 경청한다. 돌아갈 땐 항상 어르신들이 내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으신다. 아나운서는 말하기보다 듣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내 경청 능력은 출연자의 마음을 열어 OOO방송국의 시청자에게 진심을 전하는 촉매가 될 것이다'


'위기대응' 키워드에 담긴 다른 지원자의 에피소드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멘토링했던 지원자의 친구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해당 지원자는 대형 항공사 기장으로 훈련받는 과정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나는 위기대응 능력이 뛰어나다. 의경 복무 시절 청와대 경비 부대에서 근무했다. 성인 3명이 청와대 쪽으로 접근하는데 다소 미심쩍은 행동을 했다. 메뉴얼에 따라 먼저 초동 조치한 후 상황을 보고했다. 나의 발빠른 대응으로 우발 상황을 막을 수 있었고, 전역할 때 경찰청장 표창까지 받았다. 돌발 상황에서도 빠르게 상황을 판단해 적절히 대응할 줄 아는 능력은 해당 직무를 수행할 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얼개로 키워드별 에피소드를 정리합니다.


기회와 위험 요인은 자소서에 쓸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감안하고 있어야 할' 사안들을 기록해둡니다. IMF 당시 YTN은 월급이 나오지 않아 직원들이 애먹었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는 지상파 3사 공채가 아예 없었던 해가 있었습니다. 내 의지로는 어찌할 도리 없는 외부 위기 요인입니다. 반면 종편이 출범해 정치적으로 큰 격랑이 일었지만 취준생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측면에서 기회 요인으로 분류했습니다. 종편 탄생에 대한 가치 판단은 차지하고 생각해주세요.


"위기대처가 남달랐던 이라크 파병"


자신의 장점을 기술하라는 항목은 자소서 단골 메뉴입니다. 이 항목의 소제목을 위와 같이 달아놓는다면 어떨까요? 자소서 내용을 꼼꼼히 읽지 않더라도 일단 궁금은 할 겁니다. 저 제목은 제가 실제 입사 지원 과정에서 사용했던 소제목 중 하나입니다. 2008년에 이라크 자이툰 부대로 파병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경험하고 느낀 점 중 하나를 소재로 뽑아 '위기대처'라는 키워드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 키워드를 뽑아들었을까요? 바로 당시에 제가 지원한 회사가 위기대처 능력을 중시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를 분석해보니 방송 사고가 잦은 곳이었습니다. 시스템이 미비해 돌발 상황이 많았습니다. 적절히 애드리브도 할 줄 알고 돌발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방송 사고를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그런 니즈를 건드리기 위해 저의 여러 경험 중 이라크 파병을 골라 '위기대처능력'이란 키워드에 담아 면접관에게 제시한 사례입니다.


이런 니즈도 니즈지만, 기본적으로 덩치가 큰 회사일수록 '인재상' 또한 중요합니다. 각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저마다 다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는데요. 철저한 회사 분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삼성 vs 현대, 활용할 키워드 각각 달라


삼성과 현대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두 회사에 지원해본 적은 없습니다. 단순히 통상적 이미지만 가지고 설명해보겠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실제로 기업을 분석할 때는 사보와 노보 2년치를 쭉 정리하고 직접 회사를 탐방하거나 현직 직원 인터뷰도 해보는 등 굉장히 치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삼성에서는 아무래도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고, 효율을 중시하는 성격의 인재를 뽑을 것 같습니다. 그냥 삼성 이미지가 그렇게 느껴집니다. 현대는 적극적이고 돌파력 있으며 리더십으로 승부하는, 뭔가 추진력 강한 인재를 선호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냥 자세한 분석 없는 제 주관적인 이미지입니다.


삼성과 현대의 인재상을 이렇게 분석했다면 그 회사에 걸맞은 나의 특성을 물색해야겠죠. 앞서 언급한 방법으로 여러분은 키워드별 에피소드를 정리해두셨을 겁니다. 삼성 지원자라면 내가 경험했던 일들 중에 나의 논리적인 측면이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일처리 성격을 어필할 수 있는 소재를 담은 키워드를 사용할 겁니다. 현대 지원자의 경우 자신의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담긴 키워드를 자소서에 넣겠죠.


정리하면 자신의 경험에서 소재를 골라 자기소개서에 사용할 키워드로 압축하는 작업을 평소에 해둡니다. 공채가 뜨면 해당 기업을 분석합니다. 인재상 중심으로 말입니다. 기업 분석 스터디를 하셔도 좋고요. 주식회사라면 주주총회 IR자료든 뭐든 찾아서 기업 현안을 파악합니다. 그런 후 비축해놓은 키워드 중 내가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의 인재상과 니즈에 맞는 걸 골라냅니다. 자소서 글감이 컴퓨터 화면 위에 놓이겠죠? 싱싱하고 활용하기 좋은 키워드와 에피소드를 자소서 항목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차분하게 요리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작업해야 공채 전형 시간에 쫓기지 않고 효율적으로 자소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기업 분석 미리미리


참고로 기업 분석은 미리 해둘 수 있습니다. 방송국의 경우 보통 지원자가 희망하는 곳은 지상파 3사, 종편 4사, 보도 2사, KBS 지역 및 자회사, SBS 제휴 민방, MBC 계열사 정도입니다. SO가 아나운서를 뽑기도 하지만 처우나 인지도 면에서는 앞서 열거한 회사들이 각광받는 게 현실입니다.

회사 분석은 미리미리 꼼꼼하게! 출처: pixabay

컴퓨터에 각 회사별 정보를 수록하면 편합니다. 기업 개요, 인재상, 재무 현황, 기업 현안, 노보 주요 내용, 사보 주요 내용, 공채 기출 문제, 해당사 합격 후기 정도를 정리해두는 겁니다. 혼자 다 하기 벅찰 경우 앞서 언급해드린 기업 분석 스터디를 꾸려서 이런 정보들을 분류·축적합니다. 저의 경우 기업 분석과 키워드 정리에 꼬박 1년 걸렸습니다.

       

자소서 항목 굳이 꽉 채우지 않아도 돼


자소서 각 항목 당 글을 너무 꽉꽉 채우지 마세요. 어차피 면접관이 다 읽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글을 꽉 채워야 성의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항목 당 상한선까지 글을 꽉 채워 쓰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소제목에 깔끔하게 정리된 에피소드, 이를 통해 함양한 자신의 특성이 회사와 직무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정갈하게 보여주세요. 담백하게. 중언부언 길 필요도 없습니다. 화려하고 기다란 수식어도 거추장스럽습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새터민 출신입니다. 제가 입사 준비할 때 들었던 일화인데요. 그 기자는 해당 일간지에 지원하면서 자소서를 몇 줄 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고, 북한에 취재원이 많다. 북을 잘 안다. 그런데 귀사는 대북 콘텐츠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를 뽑아라' 이런 골자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떤 특장점을 가졌고 회사가 무슨 필요를 느끼는지 파악해 자소서를 작성했다면, 그 지원자는 면접장 입장부터 모든 면접관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까요? 자소서를 주저리주저리 길게 쓴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근거 있는 자신감


이렇게 키워드별 글감과 기업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지원자는 당당합니다. 준비생 시절에도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신과 회사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내게 필요한 '상부 구조'를 강화하는 활동을 합니다. 그렇게 효율적으로 입사 자격 요건을 갖춥니다. 남들이 다 어학연수를 가더라도, 나도 막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에서 어학연수 경험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굳이 어학연수를 떠나 기회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자소서 준비가 철저히 된 사람은 남들 다 학원부터 갈 때 '아, 내가 나를 분석해보니 뉴스 리딩과 헤어 메이크업이 부족하군, 이를 배우기 위해 뉴스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과정을 들어야겠다, 레슨을 받아야겠다' 이런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고차 스터디나 독서 모임, 각종 스펙을 쌓으려는 활동들도 자소서 분석을 근간으로 계획을 짜야 시간·돈 낭비를 막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객기입니다. 근거가 있어야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입사 전략을 수립합니다. 자소서가 모든 입사 과정의 첫 단추이자 상부 구조를 규정하는 하부 구조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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