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세계
내 속눈썹 길이는 12mm다. 이렇게 얘기하면 여성들은 깜짝 놀란다. '눈썹 연장 수술했냐'고 물어본다. 여자 앵커들도 나랑 뉴스를 진행하다가 내 옆모습을 보고 속눈썹 부럽다고 종종 말한다. 길긴 긴가보다.
긴 시간 방송할 때는 눈썹을 '구워서' 고정한다. 눈썹이 쳐지지 않도록 성냥에 불을 붙여 그을린 다음 속눈썹 아래에서 살짝 들어올려주면 눈썹이 U자형으로 말린 채 형태를 유지해준다.
평소 뉴스할 때는 뷰러를 집는다. 아내가 쓰던 뷰러를 아나운서 지망생 때부터 애용한다. 뷰러로 속눈썹 뿌리부터 털 끝까지 4~5회 꾹꾹 눌러준다. 그래야 방송에서 그냥 보통 눈 뜬 사람처럼 보인다. 뷰러를 안 하면 방송 화면에 눈이 반쯤 감긴 것처럼 나간다. 남자가 뷰러 들고 입을 반쯤 벌린 채(해보면 벌어진다) 눈썹을 들볶고 있다보면 희한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처음에는 나도 어색했지만 이젠 어디서든 방송을 위해서라면 뷰러를 꺼내든다.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잘 모르는 여자들의 세계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분장실에서 '그 뷰러 고무를 갈아줘야 한다'고 팁을 주는 바람에 또 그 세계의 단면을 알게 됐다. 세상에 그 뷰러의 고무가 소모품이었다니.
아내와 살아보니 이런 경험은 비일비재하다. 브랜드의 경우가 그렇다. 멀버리라는 고가의 브랜드에 대해 난 아내를 통해 처음 들었다. 버버리나 프라다, 구찌는 유명하니 통상적으로 안다 쳐도 멀버리나 코치 같은 브랜드는 잘 몰랐다. 그냥 내가 그쪽에 문외한이다. "왜 명지대 로고 비슷하게 생긴 마크가 그렇게 비싸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어쨌거나 내가 저 뷰러 고무를 사러 가진 않을 듯 하다. 8년 전부터 쓰던 거지만 뭐 그냥 써야지. 속눈썹펌도 있다고 추천받았다. 그것도 좀 그렇다. 방송 때나 눈썹 집지 평소 그러고 다니면..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