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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산문

돌아보면 소중한 사투리의 매력

가위는 '가새' 파전은 '찌짐'

by 정병진

외할머니는 "가새 좀 즈으봐아~"라면서 가위를 가새로 부르시곤 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중간에 초등학교로 바뀜) 동네 친구들도 어감이 재밌는지 종종 가새라고 많이들 불렀다. 그냥 내 고장에서나 쓰던 말이겠거니 싶었다.

영화 '말모이' 배포용 사진

그런데 얼마 전 영화 <말모이>에서 전국의 사투리를 취합하던 씬 중 충청도 출신 인물이 가위를 '가새'로 말하는 걸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사투리라는 게 일정 지역 내에선 나름대로 보편성을 띠는구나 싶어 퍽 흥미로웠다.

울 외할머니 생전에. 그립다.


배우들의 충청도 사투리가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는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꼽는다. 이범수 배우의 사투리는 완전 네이티브 급이었는데 특히 '저기'를 잘 쓸 줄 알았다. 충청도 사투리라 하면 통상 '그랬슈~ 어쨌슈~' 이런 식으로 흉내내는 배우들이 많지만 사실 그건 그리 흔히 쓰는 표현은 이니다. 보통 충청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 많이 쓴다. "그 저기 뭐여 그거", "암튼 니가 걍 저기 혀~", "긴가민가 저기한 건 걍 응? 저기허면 뒤어~" 같은 표현을 많이 쓴다. 이걸 이범수 씨가 기가막히게 대사로 치는데 "업새~" 충청도 추임새가 절로 나왔다. 알고 보니 이 양반, 충북 청주 양반이다. 다시 한 번 특정 지역 내의 보편성.


나는 여러 모로 부산과도 연이 많다. 부산 여자와 결혼한 나로선 처가 식구들의 부산 사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가령 '꽃게' 혹은 '게'를 부산에서는 '께'라고 된소리 발음한다. 어느 날 아내가 된장찌개에 자꾸 깨를 넣으라고 해서 잘 빻은 '깨'를 한 움쿰 투하했더니 왜 깨를 넣었냐고, 께를 넣으라고 지청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충청도에서는 게를 '그이'나 '끄이'로는 발음해도 '께'로는 안 한다.


'넣어라'를 부산에서는 '여어라'고 말한다. 부산MBC 재직 초기에는 뉴스 PD가 TD에게 뉴스 자막(ytn에선 문발, mbc선 수퍼)을 넣으라는 표현이 생소해 신기했다. "카메라 투 컷, 수파 인! 어이? 니 뭐하노 빨리 수파 여라 안 카나~" 1년 정도는 인이어 넘어로, 생활 속에서 들려오는 억센 사투리의 향연에 정신이 혼미했다. 부침개는 찌짐, 문지르다는 문대다. 고단하다는 디다.

영화 '말모이' 배포용 사진

사투리에 섞인 정서와 문화를 읽는 재미는 언제나 쏠쏠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 동기들의 말투가 다양해서 좋았다. 같은 사투리를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부쩍 정감이 느껴진다. 부산에서 일할 때 만났던 부산대 국문과 교수는 그래서인지 사투리를 "문화적 울타리"라고 밀하곤 했다. 학생들에게 지하철 안내문을 사투리로 바꾸는 과제를 내주는 등 사투리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던 분이다.

영화 '말모이' 배포용 사진

퇴근길 버스에 앉아 창밖 버스 옆에 붙은 <말모이> 광고를 보니 문득 떠오른 단상들이다. 여러 모로 '따순' 기억을 소환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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