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산문

아버지의 유산

쉽지 않은, 아빠의 인생 후반전

by 정병진

아버지는 농고를 졸업하시고 한전에 입사했다. 배전 업무를 하셨는데 가정집에 전기가 잘 공급되도록 현장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전봇대 타는 일이 잦으셨다. 아버지 오른쪽 무릎 바깥쪽에는 전봇대 위에서 작업하다 감전돼 생긴 상처가 나 있다. 어른 엄지 발가락 만하게 박혔다. "전기가 손을 타고 들어와 일루 나갔지" 아버지는 훈장처럼 그 흉터를 매만지곤 했다.

출처: pixabay

'전기 나갔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 아버지는 출동했다. 전봇대 위 변압기를 교체했다. 가정집 현장 가서는 나간 퓨즈를 갈아주고 두꺼비집 스위치를 올려주셨다. 전선 피복이 벗겨졌으면 감싸주고 전선 배분이나 배전 공사가 잘못돼 있으면 몇 시간이고 붙어서 뚝딱뚝딱 고친 후 돌아오셨다.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아버지는 현장 갔다가 말린 고추나 고구마, 감자 등을 얻어 돌아오셨다. 내게 줄 돈까스나 통닭은 패키지였다.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산은 그런 '성실함'인 것 같다. 아버진 늘 최선을 다해 일하셨다. 지각하는 법이 없으셨고 60 평생 조퇴나 결근을 안 하셨다. 남을 돕는 일에서 작게나마 자부심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아빠가 전기 싹 고쳤지" 의기양양해 하셨던 장면이 책갈피처럼 내 기억에 꽂혀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성실했다. 어머닌 늘 아버지의 꽉 막힘과 욱 하는 성격을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늬 아빤 착혀. 엄마배끼 몰르자너~"라며 말을 맺으셨다. 다른 여자 쳐다보면 큰일 나는 줄 아시는 아버지였다. 지금도 늘 티격태격 답답하다고, 날카롭다고 서로 불만이시지만 나는 안다. 두 분이 얼마나 서로에게 성실한지를 말이다.

출처: pixabay

아버지가 퇴직하신지 이제 수개월 지났다. 안타깝게도 아버진 아직 인생 2모작을 제대로 시작하시지 못했다. 여러 판단 미스가 발목을 잡았고 시행착오를 겪고 계신다. 자존심 때문에 그런지 아들들에게는 자세한 얘기를 하시지 않아 엄마를 통해서만 교감하는 중이다.

엄마가 아버지의 정착을 성실히 돕고 계신다. 아버지 문제로 엄마와 한바탕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그 당당하셨던 시절, 아빠 통닭이 먹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