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산문

여전히 찬란한 아내의 꿈

아내의 눈은 늘 빛난다

by 정병진

아내가 옷을 지어 팔다 보니 '부인이 패션 전공하셨느냐'는 질문을 곧잘 듣곤 한다. 그런데 아내는 정치외교학도였다. 나름대로 거국적인(?) 꿈을 품은 정외과 학생이었는데, '한반도 통일 헌법'을 연구하고 싶어했다.

출처: pixabay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통일 헌법 연구는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아야만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아내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지도 교수와 함께 '법학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로 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로스쿨에 진학해 석사 자격을 취득하고 동시에 보험(?) 차원의 변호사 시험과 서울대 박사를 준비할지' 논의하곤 했다.


아내는 북한 문제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한번은 학부 재학 시절 아내가 보름 정도 중국을 다녀왔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학부생 논문 프로그램에 참가해 팀을 꾸려 중국으로 떠난 것이다. 아내팀은 인민대 스인홍 교수를 며칠 간 심층 인터뷰하고 그의 석사급 제자들과 수 차례 세미나를 진행했다. 스인홍 교수는 국제관계전문가이자 중국 국무원 외교자문역이다.


당시 아내팀의 연구 주제는 북한 고위급 인사 자제들에 대한 인민대 학생들의 인식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북한 최고 지도자가 전향적 스탠스를 취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공부하려면 중국을 잘 알아야 했다.


중국 인민대 학부생이나 석박들은 어지간하면 공산당 최고위층 자녀들이었다. 중국의 차세대 리더십으로서 혹은 북한 등 국제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로서 이들이 북한 차세대 유력층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살펴본 유의미한 연구였다. 당시 논문 상금을 받아 언시생이었던 내게 한우 고기를 선사하신 여자친구(아내)를 보며 '이 여자다' 다짐했던 기억이 선하다.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늘 나에게 영감과 비전을 주는 아내가 고맙다.

"학교 다시 가고 싶다" 얼마 전 차 안에서 아내가 심드렁하게 내쉰 말이다.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하고 물리적인 공부 시간이 나지 않자 꿈을 접은 아내에겐 늘 빚진 마음이 든다. 산후 우울감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플로리스트 일을 비롯해 리투아니아 린넨으로 옷을 지어 장사하는 일까지 아내는 야무지게 해냈다. 요즘엔 우리집 한 켠을 꾸며 에어비엔비를 운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뉴스를 유심히 챙겨보는 아내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 아내의 꿈은 다소 거창해 보였다. 그러나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생각해보면 그게 현실적인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나운서 되면 당신을 북한 문제 전문가로 섭외할게" 농반진반 주고 받던 연애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아내는 여전히 존경스럽고 찬란하다.

아내 덕분에 우리 가정은 항상 밝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