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순대-제육-만두
치킨과 순대볶음, 제육 그리고 군만두는 고교 시절 '최애 메뉴'로 굳어졌다. 군만두는 이제 잘 안 먹는데 나머지 셋은 여전히 즐긴다.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요리들이다. 모교 기숙사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야식 시간이 주어졌고 굶주린 남고생들은 게걸스럽게 시장통 배달 치킨과 볶음 순대를 먹어치웠다. 복조리 순대와 불꽃 닭집이 유명했다.
치킨과 순대볶음의 조합은 절묘하다. 치킨을 먼저 먹는다. 당연히 반반이다. '바사삭' 소리를 내며 치킨을 뚝딱 먹어치우면 그 사이 살짝 분 순대를 치킨 양념에 찍어 먹는다. 순대볶음은 야채의 움직임이 유연할 정도로 익고 오장육부의 잡내가 말끔히 잡혀야 맛이 제대로 난다. 순대는 늘 윤기가 흘렀다.
제육은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만들었다. 굉장히 달면서도 기분좋게 맵싹해서 우리가 항상 '마약 제육'이라 불렀다. 양념 색깔은 검붉은 색인데, 온갖 몸에 안 좋은 게 가득할 것 같지만 삽시간에 침이 고여버리는 비주얼이었다. 중독성이 강했다. 푸진 양은 덤이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피끓는 남학생들을 노련하게 통제하면서 넉살 좋게 비위 맞춰주시고 연애 상담까지 해주셨다. 야밤에 사감 몰래 "군만두 5천 원어치!" 튀겨 달라 전화하면 바특하게 튀겨놓은 군만두를 들고 우릴 기다렸다가 "(사감한테) 걸리지 말라"며 만두 툭 건네곤 자러 가셨다. 정 많이 들었다.
배고픈 시절 남고를 다녀서 더욱 맛있는 기억으로 자리한 걸까. 틈나면 축구, 족구하고 활기를 주체 못해 기초대사량이 컸던 때의 꿀맛 같은 '치순제만'이 생각난다. 배탈 다 나은 것 같다고 그새를 못참고 간사하게 닭강정 사먹다가 문득 떠올랐다.
맛있던 기억 속 친구들과 어정쩡하게 헤어져 서로 데면데면한 나이가 되어 간다. 그 시절 '사생'들은 잘 지내는지. 미처 돌보지 못한 관계가 어찌 그리 쓸쓸한지.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