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현장 중계를 곱씹다
'남북정상회담' 특보를 지난해 2차례 진행했습니다. 프레스센터에 파견돼 현장 중계 앵커를 맡았습니다. 2018년 남북 정상이 총 3차례 만났지만 두 번째는 판문점에서 긴급하게 이뤄져 사실상 정식 정상회담은 첫 번째와 세 번째 회담을 가리킵니다.
현장 진행하면서 느낀 건 우리 회사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들이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점입니다.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인들이 곧잘 '피가 뜨거워진다'는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물꼬를 트면서 어느덧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언론의 관점이 어떻게 정립돼야 할른지 고민해봅니다.
호칭은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관전 포인트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바뀐 점이 있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다 뉴스를 해봤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칭은 늘 '김정은'이었습니다. 보통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이나 잔혹한 살인범을 뉴스에서 호명할 때 '씨'도 안 붙이는 경향을 띱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명 방식이 꼭 그런 식이었습니다. 이제는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줄여서 '위원장' 호칭을 자연스레 붙입니다.
물론 모든 언론이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건 아닙니다.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두 정상의 만남 자체가 파격이었습니다. 판문점에서 두 정상이 남북 간 경계선을 넘나들 때 프레스센터에 있던 수천 명의 언론인들은 환호했습니다. 절로 나온 탄성이었죠.
하지만 3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대다수 언론인이 두 정상의 만남을 '팔짱 끼고' 바라봤습니다. 탄성은 없었습니다. '비핵화' 관련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이 무엇일까 얼른 알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결과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까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다보니 남북 간 비핵화 논의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만, 남북 간 충돌을 완화하는 군사적 합의는 상당히 진보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는 현재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작업과 GP 철수로 상당한 수준 실현되고 있습니다. 2018년 한 해 북한의 무력 도발이 0건에 그쳤다는 점도 덧붙여봅니다.
남북 평화 시대, 언론의 역할은?
두 번의 굵직한 특보를 경험하며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지점이 생겼습니다. 한반도 평화 국면에서 남한과 북한의 언론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할 것인지 말이죠. 혹은 '하게 될 것인지'라고 해둘 수도 있겠네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국면이 펼쳐지게 될 테니까요. 이와 관련해 독일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동독의 다수 언론사가 서독에 합병됐습니다.
2017년에 발간한 통일부의 독일 통일 총서 <언론 분야> 정책 문건을 보면 서독에는 통일 전 각 지역에 거점을 둔 공영방송사가 여럿 존재했습니다. 1950년 이들은 상호 연합해 전국방송채널 ARD(Arbeitsgemeinschaft der öffentlich-rechtlichen Rundfunkanstalt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를 출범시켰는데요. 오늘날 제1의 독일 공영방송입니다. 방송의 중앙집권화를 해체한다는 기조 속에 연합이 이뤄졌습니다.
그 이후에 전국 단위 단일 방송사로 탄생한 또다른 회사가 ZDF(Zweites Deutsches Fernsehen)입니다. 모두 수신료가 주 수익원입니다. ARD와 달리 중앙 집중적 방송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다만 방송에 관한 권한은 각 주정부 소관입니다. ZDF 운영 주체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죠. 이렇게 통일처럼 국가 단위 평화 국면이 찾아왔을 때 언론 지형은 구조적으로 쪼개지고 통합됩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 한쪽 언론사는 그 나라 국민의 입장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서독 뉴스가 전체 보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라면 동독 뉴스는 고작 1% 안팎에 불과했습니다(Hartmamm-Laugs/Goss 1988, 100). 통일에 반대하는 국민의 불만을 여과없이 보도해 정치권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데 한국언론재단 연구원이 펴낸 논문 <통일과 언론: 독일의 경험>을 보면 독일 언론은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사실만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훈수를 두기 보다는 통일과 관련한 일체의 논의를 정치권에 맡기고 언론은 각각이 보여주는 사실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독일 통일 과정은 남북이 처한 상황에 직접 대입하기 힘들 정도로 다릅니다. 언론이 굳이 훈수 두지 않더라도 국민의 입장을 오롯이 반영해주는 정당의 존재감도 한국 여의도와 다른 지점 중 하나입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을 경험해본 나라에서 언론이 어떤 양상을 나타냈는지 연구하는 건 한반도 평화 국면에서 모종의 영감을 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만, 기존 통일 담론에 대해선 이게 아직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통일 담론은 너무 낡았습니다. 꼭 남북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합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서로 다른 나라로 살면서 왔다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각 다른 나라로 지내고 정치나 경제적으로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편파 보도를 돋보기로 찾아야 할 정도'
전쟁이 끝나고 영구적인 불가침 시스템을 구축한 후 남북 간 자유 왕래가 어느 정도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권력의 감시견'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선출에 힘이 되어 준 정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방송사 사장과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공영방송인들이 있기 때문이며, 방송평의회에도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을 뛰어넘어 프로그램과 인사 문제를 공정하게 판단하는 위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Meyn 1992, 118). 이와 함께 방송전문가, 방송 학자의 논평과 연구 논문,시민들의 감시를 통한 압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의 텔레비전은 시청자들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른 미디어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 실제 ARD와 ZDF의 뉴스 보도나 선거 방송에 대한 내용 분석을 한 학자들은 정당에 대한 편파 보도가 “돋보기를 놓고 찾아야 할 정도”라고 표현했다(Schatz 등, 통일과 언론: 독일의 경험, 42p, 1981; Weiß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