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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보는 군인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by 정병진

개인방송 BJ가 폐요양원에서 공포체험 방송을 하다가 사람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일이 뉴스가 됐다. 이 소식을 접하고 보니 예전 부산에서 군생활 할 당시 들었던 '귀신 보는 군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 군인은 본부 중대 소속으로 나보다 1~2개월 선임이었는데 자대 배치 초기에 회자됐던 '개 귀신' 일화가 유명하다.

얘네들은 너무 귀엽네요. 출처: pixabay

막사 뒤에는 족구장 1개 반 크기의 공터가 있다. 이 쓸데없는 공간에 잡초가 자랄 때마다 병력들은 수시로 투입돼 잡초를 제거했다. 어느 날 문제의 A군이 우리 부대에 전입했다. 부대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A도 예외 없이 잡초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그런데 이 신병이 신병다운 빠릿빠릿함은 보여주지 못할 망정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보다 못한 한 선임이 다그치며 물었다.


"야 신삥(신병의 비속어)! 니 왜 가만히 있는데?" 한 동안 대꾸하지 않는 A군. 그런데 그는 어느 한 지점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야 니 미쳤나?" "여기 개가 한 마리 있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개가 돌아다녀요" 잡초와 군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잡초 제거하랬더니 왠 개소리냐며 말 그대로 개갈굼을 당했다. 해당 중대원들은 그렇게 무의미한 잡초 제거의 시간을 보내고 일과를 마쳤다.


그날 저녁 흡연장에서의 화두는 단연 '개피소드'였다. 웬 신병이 있지도 않은 개가 보인다며 헛소리를 해댄다는 신소리가 오갔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된 수송중대 고참들이 화들짝 놀랐다. "미친.. 그 XX가 뭘 봤다고?" "멍멍멍 개 봤다 안 하나" 그날 수송중대 고참 몇몇이 은밀하게 모였다. 본부중대쪽 선임도 한 둘 불렀다. "사실 우리가 막사 뒤 공터에 개를 한 마리 묻었다..."


전말은 이랬다. 수송중대장이 수송대에서 기르던 개가 어느 병장을 향해 심하게 짖어댔다. 분을 참지 못한 이 인간이 개를 연장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선임들은 중대장에겐 개가 고삐 풀려 도망갔다 거짓말했고 개 사체는 막사 뒤에 묻었다. "이거 완전 비밀"이라며 수송중대 해당 선임들만 알고 있기로 입을 맞췄는데 노란 견장을 찬 전입 신병이, 그것도 타중대 소속이 매장한 개를 봤다 하니까 기가 찰 노릇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초소 지붕 위에서 선임 어깨로 날아왔다고 합니다. 출처: pixabay

A군의 이상 행보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 부대는 군수품을 보관하는 '창고 부대'였기에 24시간 초병 근무를 창고 지대에서도 서야 했다. 그런데 A군이 초소 근무 중 선임 어깨 위로 축 내려온 여자 귀신을 보고 까무러쳤다. 나중에야 군무원들을 통해 그 초소 옆 나무에서 여자 군무원이 과거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A군은 한 동안 국군병원에서 따로 지내다 돌아왔고 내가 자대에 왔을 때는 나랑 같이 부대 내 교회를 섬겼다.


유격 훈련장에서 취침 전 선임들한테 들은 얘기라 신뢰성은 담보하기 힘든 이야기다. A와 주일마다 교회일 하며 자주 마주쳤지만 굳이 내가 이 사연을 당사자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워낙 공포물을 좋아하는 나로선 잊기 힘든 군 시절 일화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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