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1920년대에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면 만주로 넘어가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잘 몰랐던 건데 이 책을 보고 알았네요. 조선 최초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 나혜석의 글을 엮은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라는 책입니다.
나혜석의 매력
사실 나혜석이란 인물을 잘 몰랐습니다. 책을 읽으며 알아보니 간단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1896년에 태어난 여성입니다. 그녀가 영유아기를 보내며 접어든 1900년대 초는 우리에게 의외로 막연한 시대입니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않는 시기입니다. 정치적, 역사적 평가가 덜 이루어졌다는 명목 하에 중고교 교육 과정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제강점기 시대 구분 차원에서는 배웁니다. 제가 잘 모른다는 부분은 민중의 실생활이랄까요. 영화 <해어화>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며 멋스러움과 불안함이 교차했던 당시의 모습을 가늠할 뿐입니다.
그런 시대에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해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주의를 고발합니다. 세계 일주도 합니다. 1927년 6월 19일 부산 부산진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해 1929년 3월 12일 배로 부산항에 도착합니다. 1년 8개월 23일 동안 한국을 떠나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죠. 미국에서는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칩니다. 여류 화가 나혜석의 행보는 당시 일간지인 <조선일보>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월간 <삼천리>에 수시로 실렸습니다.
나혜석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센세이셔널한 사람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신생활에 들면서, <삼천리> 1935.2-
나혜석은 여성 해방과 권익 향상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준 인물로 보입니다. 역시 삼천리에 1936년 1월에 실린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에는 영국에 체류할 당시 영국 팽크허스트 여성 참정권운동 단원과 나눈 대화가 등장합니다.
나혜석: 깃발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나요?
S: '여성의 독립을 위해 싸우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였습니다.
나혜석: 물론 많이 잡혔겠지요?
S: 잡히고 말고요. 모조리 잡혀 들어가서 금식 동맹을 하고 야단났었지요.
나혜석: 회원의 표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S: 있지요. '여성에게 투표를'이라고 쓴 배지를 모자에 달고, 띠를 두르지요. 이것이 그때 두른 것입니다.
부인은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다 낡은 남빛 띠를 보여주었다.
나혜석: 이것 나 주십시오.
S: 무엇하시게요?
나혜석: 내가 조선 여권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 …
딸을 키우고 아내를 둔 남편으로 살다 보면 여성이 세상 살기가 참 어렵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아내가 경력 단절로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온갖 성범죄 관련 뉴스를 준비하고 보도하다 보면 이거 참 딸아이 밖에 내놓기가 겁납니다. 물론 역차별 논란도 커진 상태입니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아 생기는 잡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구조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성평등 지향점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옳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보고 기록하다
기사 중에 스케치라는 유형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기자가 보는 풍광을 시청자나 독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끔 글로 그려주는 기사입니다. 나혜석의 여행기에는 스케치 기사라고 해도 손색 없는 풍광 묘사가 자주 나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토머스쿡 자동차로 시가지 구경을 나섰다. 안내자는 적어도 5, 6개국 언어에 능통하여, 손님에 맞춰 각국어로 설명을 한다. 건물 구조설비가 프랑스와 달라 몹시 크고, 땅의 기복이 많고, 구릉과 못이 많다. 정연한 건물은 각종 공장이다. 공업국의 면모를 보인다. 건축 격식이 풍부한 것은 프랑스의 이상이다. 자작나무의 녹색과 구운 벽돌을 같이 사용한 것이 아름다웠다.
-69p-
모스크바 시가는 너절하다. 그리고 무슨 폭풍우나 지나간 듯하여 수습할 길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실컷 매 맞은 것같이 늘씬하고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염세적 기분이 보인다. 남자들은 와이셔츠 바람으로 다니고, 여자들은 모자를 쓰지 않고 발 벗고 다닌다. 내용을 듣건대 비참한 일이 많으며, 외국 물건이 없어서 국내산으로만 생활하게 되므로 물가가 비싸고 불편한 점이 많다 한다.
-40p-
아양보양한 그 시절의 글투
그 당시 잘 쓰던 표현이지만 지금은 생소한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가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아양보양하고 앙실방실하고 오밀조밀하고 알뜰살뜰한 프랑스 부인 중에 점잖고 수수하고 침착하나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지닌 이다. 강약을 겸비하고 물샐틈없는 규모를 갖춘 살림살이와 염증이 나지 않고 신산스럽지 않은 생활이 예술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 다정스럽게, 자식들에게 엄숙하게, 친구에게 친절하게, 가축에게 자비스럽게 대하는 데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8p-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속 여성 주인공 고애신이 '퍽'이란 부사를 자주 쓰던데 나혜석도 '퍽'이란 표현을 퍽 자주 썼더라고요. 제 고향 충청도 식으로는 '겁나게' 정도의 표현일 겁니다. '너무' 정도.
술술 읽히며 시원시원한 책입니다. 한편으로는 쓸쓸합니다. 나혜석은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연애 사건으로 이혼을 합니다. 사회적인 냉대 속에 행려병자로 떠돌다가 1948년 불꽃 같은 삶은 식어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