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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Apr 17. 2019

막말 논란 前 의원, 우리 방송서 '횡설수설'했던 기억

결국 퇴출됐는데 결론적으로 잘 된 듯

우리 대담에 출연한 '그'


전직 국회의원의 세월호 유족 막말 논란을 보고 있자니 그가 우리 방송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날이 떠올랐다. 재작년 가을 <뉴스나이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추석을 맞아 대통령이 일일 교통통신원으로 분했던 날이다.


미국에서는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틸러슨 전 장관은 '북한과 대화 채널 열려 있다'고 언급했는데 트통은 "대화 해봐야 시간 낭비"라며 북을 압박했던 것이다. 이 사안을 놓고 지금은 모 지자체장이 된 한 패널과 '논란의 패널'이 대담을 벌였다.


지자체장이 된 패널은 '고도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향후 틸러슨이 사실상 경질되면서 이 분석은 틀린 게 됐다. 그런데 '논란의 패널'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패널의 엉뚱한 평론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전파를 타면 안 되므로 당장의 팩트는 차치하더라도 논리 만큼은 앵커가 걸러줘야 했다.


"엇박자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앨라배마 상원의원 보궐선거를 위한 공화당 내 경선이 있었어요. 트럼프가 미는 사람하고 또 한 사람은 스티븐 배넌이라고 얼마 전에 트럼프한테서 쫓겨난 사람이 있었는데 누가 이겼는지 아세요? 스티브 배넌이 민 사람이 이겼어요. 그 이유는 뭐냐. 현재 국민 전반적으로 트럼프를 당선시킨 그런 정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까지 듣고 이게 무슨 논리인가 생각했다. 당시 앨라배마 경선은 배넌과 트럼프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다. 문제의 패널은 배넌이 민 사람이 트통이 민 사람을 이겼다고 했다. 그런데 왜 '트럼프를 당선시킨 정서 덕분에 트통이 민 사람이 졌다'고 말하나 싶었다. 트통을 당선시킨 정서가 작용했다면 트통이 민 사람이 이겨야 했으니까.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메리카 퍼스트. 다시 말하면 트럼프로서는 앞으로 4년 후에 자신의 재선거를 생각해 볼 때 현재 미국을 가장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핵을 전제로 한 북한과의 대화? 이것은 트럼프의 로드맵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동어반복


트통이 심판당했다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트통은 북한과 핵 전제로 대화할 수 없다'는 말로 튀어버렸다. 그는 횡설수설했다. 내 나름대로는 그 패널에게 '눈치껏 알아들으시고 논리를 정돈해서 말하시라'는 취지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앨라배마주에서 배넌이 밀었던 인물이 됐다, 스티브 배넌은 워낙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인데 트럼프도 그렇고 배넌도 그렇고 지금은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스티븐 배넌은 대중 강경파였고, 북한 문제는 중국을 압박해 중국이 지렛대 역할을 하게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북한에도 강경한 입장이었다. 트통도 한창 '리틀 로켓맨'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을 조롱하고 북한에 적대적일 때였다. 결국 둘 다 북한에 강경한 입장이었다. 따라서 배넌이 민 사람이 트통이 민 사람을 이겼다는 사례는 논거로 사용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배넌은 "미국이 북한에 군사옵션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가 트럼프와 틀어진 측면도 있었다. 배넌 사례는 그의 논지와 맞지 않았다.


"그렇죠. 그랬는데 지금 틸러슨 같은 경우 상당히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 얘기는 뭐냐하면 배넌이 승리하는 걸 보고서라도 트럼프는 대 북한 기조에 있어서 지금 말씀하신 압박 위주의 강경노선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어요"


동어 반복이었다.


트럼프가 '대화하자'는 유화파였다면 강경한 배넌이 이겼으니 배넌처럼 강경하게 북한을 압박하자는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나 배넌이나 다 강경파였다. 결국, 또 횡설수설이었다. 본적으로 앨라배마 주 선거와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얼마나 상관관계를 갖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대담 시간 내에 이 분이 논리를 스스로 정돈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대담 물꼬를 다음 쟁점으로 텄다.


야당 입장인 그가 좀 더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 현안과의 관계 아니겠습니까? 청와대는 북미 간 접촉 역시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의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야권에서는 한국만 빼고서 지금 뭔가 논의가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우려도 제기하고 있어요?"


기회를 줬지만 이 문제의 패널, 이번엔 팩트가 아닌 가짜 주장을 펼쳤다.


"미국은 대북 압박이 기본 성격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냐. 제가 말씀드리기 조금 불편하지만 대통령이 미국하고 얘기할 때는 우리도 그 방식으로 간다고 얘기하고 나서 또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생각해서 대화를 또 해야 되겠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왔다갔다하는 거죠"


이 말은 틀렸다. 한미 간 대북 입장은 워낙 중요한 '기조' 문제여서 당시 대통령의 국내 워딩을 모조리 팔로우업 하고 있었다. 문통은 한국에서 국무회의 모두 발언 등을 통해 '대북 제재·압박과 대화를 동시에'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제재를 기본으로 하되 대화를 병행하자는 논리였다. 지금도 그렇다 보니 얼마 전 북한에서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 돼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의 틀린 발언을 짚었다.


"대화만 얘기하지 않고 한국에서도 제재와 압박, 동시에 대화를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도... 좋은 지적입니다. 약간 북한이 도발했을 때, 그때만 그렇게 얘기하죠. 그래서 여러 가지로... 이 국면만 지나면 곧 대화의 국면이 온다라든가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미국의 트럼프가 볼 때는 상당히 제가 볼 때는 못마땅할 거예요"


사필귀정


그는 '대북 대화를 거론하는 한국을 트통이 싫어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담 이후 시청자 심의에서는 '횡설수설' 패널에 대한 쓴소리가 여과없이 나왔다. 회사 내부에서도 여러 말이 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문제 소지가 있는 발언을 잘 지적했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어느 선배는 내게 "대담은 패널들과 싸우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게끔 끌어내주는 것"이라며 압박성 발언을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출연자가 편안하게 평론하고 논증할 수 있도록 앵커는 신경써줘야 한다. 하지만 난 여든 야든 논리가 틀렸거나 팩트가 잘못됐다면 그걸 우리 방송에 고스란히 실어줘선 안 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모양새가 껄끄러워질지언정 틀린 말이 나가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해당 출연자와 회사 혹은 나의 관계가 틀어지는 게 오보 나가는 것보다 낫다.


결국, 그 문제의 패널은 이날 이후 두번 다시 우리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다. 혹자는 '너가 패널 날렸다'며 내게 핀잔을 주곤 했는데 요즘 그 분이 설화로 여론을 들끓게 하는 모습을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필귀정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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