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끝나야 잘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끝나지 않은 어중간한 상태를 싫어한다. 중간에 걸쳐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싫어한다. 마치 작업표시줄이 가득 차있는 불편한 상태의 컴퓨터처럼 머릿속이 복잡하게 가득 차 있는 기분이 든다. 앱이 잔뜩 실행되고 있는 스마트폰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느려지면 최적화나 앱 종료를 시켜준다. 사람도 기계와 다르지 않은데 인터넷이 느린 것은 못 참지만 스스로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
걸쳐있는 상태를 싫어하는 나의 일상 속에는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행위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바깥에서 있었던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몸에 묻은 것들을 씻어내지 않고서는 집에서 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루틴은 밖에서의 스트레스를 집 안의 내 시간에 까지 끌고 들어오지 않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밥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한다. 매 식사마다 그렇게 하시는 엄마를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라온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설거지까지가 나에게는 요리이고 식사이다. 거기까지 완료하지 않으면 어딘가 찝찝하다.
이런 습관에는 정말 큰 장점들이 있다. 첫 번째로 항상 깔끔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깔끔한 것을 넘어서 정서적으로도 깔끔하다.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질 끌려가는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행위를 할 때 방해받지 않을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때도 더 편하게 쉴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는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할 때 시간과 노력이 덜 든다는 것이다. 위의 예를 이어가 보자면 설거지를 해두지 않으면 다음 식사 때 설거지부터 해야 한다. 상상만 해도 너무 귀찮지 않은가... 식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 이런 수고를 무릅쓰고 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하는 것 자체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큰 효과를 가져온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에서 미완성된 끝맺음은 큰 방해가 된다.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운동복을 빨아놓지 않아 운동하기 전에 옷부터 준비해야 한다면, 운동 도구들을 정리해두지 않아 세팅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하나의 일이 되기 때문에 운동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잘된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 이런 특성을 습관 형성에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만들고 싶은 습관은 하기 쉬운 환경을, 없애고 싶은 습관은 시작하는 것 자체를 어렵고 귀찮게 해 줄 문턱을 만들어주면 된다. 예를 들면 게임하는 습관을 없애고 싶다면 게임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게임 전에 설치라는 귀찮은 단계를 하나 더 넣음으로써 습관을 없애는데 도움을 준다.
끝나지 않은 상태를 싫어하는 성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고민해 찾아냈고, 생활 속에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생활 속에서 잘 실천하고 있으면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첫 번째는 책상 정리이다.
책상은 집에 있는 것이든 회사에 있는 것이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앉는 곳이다. 목적성을 가지고 찾는 곳이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야만 하는 곳이다. 내 책상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항상 비어있다.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고 앉았을 때서야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꺼낸다. 그게 아무리 매일 필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용이 끝나면 정리하고 매일 꺼내기를 반복한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끝맺음 습관인 것이다.
이런 책상 정리 습관은 오롯이 그날 그 시간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은 무언가를 보면 자꾸 관련된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어제의 메모는 어제의 일을 떠오르게 하고, 치우지 않은 아메리카노는 괜히 갈증을 느끼게 한다. 한 번 집중이 깨지면 다시 집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생산성도 급격히 떨어진다. 다른 생각이 나게 할 만한 방해 요소를 아예 치워버림으로써 집중과 생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루가 끝났을 때 했던 일들과 나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오는 뿌듯함은 덤이다.
두 번째는 투두 리스트이다.
어떤 방법을 이용해도 상관없다. 다이어리에 적기도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두기도 한다. 투두 리스트 관련된 앱들도 많이 있다. 나는 한때 Microsoft의 Todo와 Google Keep을 이용했었는데 애플 생태계에 정착한 지금은 iOS의 기본 앱인 '미리 알림'을 이용한다. 시간과 장소 지정은 물론 원하는 주기에 맞춰 반복 설정도 가능해 매우 편리하다. 방법은 계속 변해왔지만 매일 작성하고 있고 이를 통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눈으로 보면서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다.
투두 리스트를 쓰다 보면 생각보다 하루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기 계발서나 관련 영상들을 보다 보면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일을 3가지 이하로 정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못하기 때문에 될수록 적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생각나는 것을 하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일도 생기고 오늘 하루가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투두 리스트를 작성하면 오늘에 대한 기록은 물론 하루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까지 세워볼 수 있어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잘한 것들은 가능한 먼저 빨리 끝낸다.
해야 할 일인데 정말 자잘한 것들이 많이 생긴다. 적게는 5분 많게는 20분 정도 걸리는 일들. '조금만 있다가 하지 뭐'라는 생각이 아주 쉽게 드는 그런 일들. 이런 일들을 '어차피 금방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미루기 시작하면 '여러 개의 어차피 금방 하는 일'이 돼버린다. 금방 하는 일이 여러 개가 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된다. 그렇게 나의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일을 하는 내내 떠오르며 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잘한 일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해결할 순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나면 한 곳에 적어두고 중요한 일과 일 사이의 자투리 시간에 몰아서 해치우는 것이 좋다. 이처럼 작은 것들을 시간을 정해두고 빨리 끝내야 정말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한 작은 습관들은 귀찮지만 막상 실천해보면 생각보다 생산성을 많이 끌어올려 준다. 우선순위, 집중, 효율, 생산성과 같은 단어들은 어찌 보면 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해내느냐가 중요하다. 끝맺기를 잘 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마무리 짓는 일을 신경 써서 해보기를 추천한다. 그 결과로 머릿속의 골칫덩이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끝맺어야 하는 것은 [이직기 시리즈]이다. 8월 8일에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9월 11일인 지금까지 겨우 3편이 업로드되었고, 4번째 글이 작성되고 있다. 이직기 외에도 써보고 싶은 글이 많은데 연말까지 하나의 시리즈를 더 만들기 위해 10월까지는 "이직기 끝맺음"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