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꾼이 보는 추억마케팅 (feat. 포켓몬스터 빵)
<이 글은 포켓몬스터 빵이 전국적으로 핫하던 2022년 2~3월에 초안이 작성된 글로, 상대적으로 빵을 구하기 쉬워진 현재의 상황과 정확히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추억팔이꾼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종종 쓰는 단어이다.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추억을 소환한다. 누군가와 술을 마실 때 '그땐 그랬지' 하며 과거의 일들을 꺼내온다. 회상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추억팔이꾼이 된 데에는 이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억력
나는 기억력이 매우 매우 뛰어난 편이다. 지나간 정보들도 곧잘 기억해내곤 한다. 나의 기억력은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는데서 시작된다. 기억이 사진 혹은 영상처럼 남아있어 다시 생각해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과목들도 있었지만, 단순 무식하게 외우면 되는 과목도 많이 있었다. A는 B와 C다라고 외우는 게 아니라, A와 B, C에 대해 설명된 강의자료가 통째로 그려졌다.
그렇게 나는 추억팔이꾼이 되었다. 친구들이 희미해진 기억을 나에게 묻고, 나는 그 기억을 꺼내고, 과거와는 달라진 우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추억팔이꾼이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돌아왔지만, 오늘의 주제는 추억팔이꾼이 아니다. 그럴싸해 보이는 나의 기억력도 아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몇 년 아니 거의 20년 만에 돌아온, 요즘 매우 핫한 (핫했던) 이것이다.
정말 난리다.
구할 수가 없다.
안양에 살던 1999년, 엄마는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기 위해 포켓몬 빵을 사 먹을 500원을 쥐어주셔야 했다. 동전 하나면 빵은 물론 스티커까지 구할 수 있었던 추억이 있는 그 빵이다. 당시에 스티커만 구하고 빵은 쿨하게 버리는 초딩들도 있었다는데 용돈이 귀했던 나는 빵까지도 야무지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앨범에 포켓몬 스티커를 모두 모았을 땐 뭐라도 된마냥 뿌듯해했다. 나이가 들면서 버려진 그 스티커를 이제 와서 다시 모아보고 싶다.* 500원이 귀했던 초딩이 자본력을 갖춘 나이가 되었는데... 이번엔 빵이 없다.
* 그때의 스티커가 이제는 나에게 없는 이유. 미니멀리즘 - "소비로 나를 만드는 법" 보러 가기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빵 자체는 맛이 없다. 빵의 맛은 20년 전 그 시절과 똑.같.다. 아니 오히려 원가절감이 되었는지 초코잼이 적은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카페나 베이커리라고 불릴만한 가게도 많지 않았기에 맛있는 빵이라는 게 드물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어려서 그랬던 건지 슈퍼 빵이더라도 제법 맛있게 먹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말 맛있는 베이커리가 많아지면서 나름 고급 빵집이었던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 빵 조차도 맛있다고 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그런데도 포켓몬 빵을 없어서 못 구한다. 우리가 구하려고 하는 것은 포켓몬 빵이 아니라 띠부실과 추억이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에서는 띠부실만도 빈번하게 거래되고 있을 뿐 아니라, 스티커만 빼내고 먹지 않은 빵을 비닐에 담아 파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 "포켓몬빵 100개 팔아요… 근데 씰은 다 뺐어요" 황당 판매글 - 머니투데이 기사 보러 가기
코찔찔이들이 다 커서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지갑이 두둑해졌고 돌아가지 못하는 추억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이런 생각을 예전에도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2020년 바람의나라라는 전설의 게임이 스마트폰이라는 흐름을 타고 모바일로 출시했을 때였다.
바람의나라는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히트했던 넥슨의 세계 최초 MMORPG 게임이다. 당시 게임사들의 주 서비스 방식이 현재와 다르게 부분 유료화나 게임 내 결제가 아닌 정액제*였기에 마음대로 할 수 조차 없는 게임이었다. 용돈을 모으고 모아 60시간 무료 게임 쿠폰이 들어있는 책을 구매해 1분 1초를 아끼면서 했던 기억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한 줄로 쪼르륵 앉아서 다 같이 사냥을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가진 게임이다.
* 서비스 요금 과금 체계의 일종으로 정해진 요금만 지불하면 정해진 기간 동안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식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즐겼던 게임이 모바일로 나오니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 BGM을 들으며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실제로 구글 플레이 게임 매출 순위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초기 흥행에 성공했다.* 1위를 못했으니 별 볼 일 없냐고 하기엔 그 당시 1위 게임은 리니지였다. 더 강한 자금력을 가진 분들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 넥슨 바람의나라:연 구글 매출 순위 2위 등극… 시장 변화 주목 - 기사 보러 가기
아쉽게도 추억이 전부인 상태의 게임을 보이며 최악의 운영능력을 자랑한 제작사 덕분에 금방 흥행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잠깐이나마 친구들과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추억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추억마케팅 할만하네' 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어느 시대를 살았느냐에 따라서 추억은 서로 다르다. 백화점 지하에 들어와 있는 '태극당'이라는 베이커리를 보고 나는 '이름이 왜 저래?'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과거의 데이트했던 풋풋한 기억을 떠올리신다.
추억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가성비와 효율은 이미 뒷전이 돼버린 채 무지성 소비를 하게 되기도 한다. 돌아가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화되어버린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이전과 이후 세대들의 추억에 대해 잘 모른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을지라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억의 힘이 약해진다. 모든 세대를 감동시킬만한 추억이 있다면 그 힘은 엄청나겠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트렌드를 민감하게 쫓아간다는 것은 남들보다 빠르게 혹은 적어도 뒤처지지 않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면 한때의 트렌드가 특정 세대를 대표하는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그 추억이 언젠가 다시 시장에 나타나면 누군가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추억이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