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돌스토리 Aug 17. 2022

[얼렁뚱땅 에세이] 비의 딜레마

좋은 거야 나쁜 거야?

2022년 여름, 서울이라는 글씨가 써진 날씨 어플에는 한 달 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몇 주간은 실제로 비가 내린 날이 많지 않아 '기상청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주는 일을 하는 듯 보인다.

며칠째 새벽부터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린다. 오전 5시 30분쯤 운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빗소리와 마치 세차장에 들어온 것 같이 쏟아지는 빗물은 잠에서 깨고도 남을 만큼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자차를 활용한 출근을 결심한 이후로는 바깥 날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날씨에 맞춰 옷을 입거나 우산을 챙겨야 했지만 주차장에서 주차장까지 연결시켜주는 나의 하얀 자동차는 나 대신 비를 다 맞아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와 통화하던 중 "차를 타고 다니니 날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좋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엄마는 뒤이어 "운전을 하니 더더욱 날씨에 신경 써야지."라고 받아쳤다. 같은 행위와 환경을 두고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와이퍼가 소용이 없다. [출처 - pixabay]




비가 오면 운전할 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어두운 상황이라면 차선을 보고 운전하기보다는 앞차를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30살이 넘은 아들이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걱정되는 것 같다.

오늘 출근길에는 비는 물론이고 천둥번개까지 몰아쳤다. 그리고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번개가 신호등을 때린 것이다. 순간 스파크가 튀고 신호등이 꺼졌다.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그 신호등만을 바라보던 차량은 2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

빛을 잃어버린 신호등을 보며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첫차의 브레이크 등이 불 꺼진 신호등처럼 꺼지며 슬금슬금 앞으로 가기 시작했고 뒤차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갔다. 고장 난 신호등 아래서 아무도 소통하지 않았지만 시속 30km짜리 질서가 만들어졌다.

순간 운전을 할 때 더욱더 날씨를 신경 써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위험하구나. 내가 그렇다고 믿고 있었던 것은 더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엄마의 지혜에 비하면 보잘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비 오는 날 운전을 안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살다 보면 내 생각과 다른 의견에 부딪힐 때가 많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은 딜레마에 빠지는 일도 자주 있다. 하나의 가능성 하나의 생각에만 매몰되면 나도 모르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른 아침 비와 함께 번쩍인 번개 덕분에 오랜만에 체감할 수 있었다.



여기? 저기? [출처 -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전문가가 너무 많은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