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꽤 할 만해졌다.
더 이상 일을 잘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에 잡히는 것마다 서툴렀다.
땀으로 미끄러지는 도구를 놓치기도 했고,
손바닥이 찢겨 피를 흘린 채 하루를 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 손은 거친 도구의 무게와
쇳소리에 익숙해졌다.
손가락이 기억하는 순서대로 움직였고,
눈을 감아도 몸이 알아서 반응할 만큼
일은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주변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내 작업 도구가 늦게 배정되거나,
누군가 일부러 방치한 듯한 험한 일터로
나를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쉬는 시간에 무심히 던지는 말들,
피곤하다는 듯 흘러나오는 농담들 속에는
분명한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어린 게, 요즘 제일 좋은 일 다 차지하잖아.”
“힘만 세다고 사람 노릇 다 하는 건 아니지.”
“우린 이제 뭐, 밀려나야 하나?”
그 말들은 굳이 날 보며 하지 않았지만,
내게 향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어렸지만,
사람의 시기와 질투는 꽤 경험했다.
그래서 화를 내기보다 이해하려 했다.
내 몸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고,
반면 이곳의 어른들은
마르고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그들에게
몇 없는 일거리를 가져가는
나 같은 존재는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일을 양보한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었다.
손에서 도구를 놓는 순간,
나는 다시 약한 아이로 돌아갈 것 같았다.
게다가 한 두 번 정도는 양보할 수 있으나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숨이 차고 몸이 부서져도, 버티고 일하는 게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정말 강해 보이는 몇몇은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나를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나를 이곳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뜻일까?
어찌 되었건 상관없다.
진짜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를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날 밀어내려는 이들.
진짜 문제는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 때문에 일이 터졌다.
누군가 자재를 훔쳐 팔았고,
내가 범인이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하츠, 나를 고발한 자다.
동시에 내가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인부였다.
나는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순간 사람들의 눈이 나를 찔렀다.
그 눈빛은 단순히 불신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자재가 사라지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 자리에 사라져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뒤편에서는 누군가가 입꼬리를 비틀며 히죽 웃었다.
어깨를 맞대고 선 몇몇은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속삭임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봐, 저 꼴 좀 보라지.”
“그러게 괜히 잘난 척하더니.”
낄낄거리는 기침 소리,
억눌렀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
그리고 눈길을 돌리며 수군대는 작은 웅성임.
그 모든 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내 귀를 짓누르고 있었다.
떨렸던 나의 눈동자는 깊어졌고,
입을 연 나의 목소리는 분노가 서렸다.
“그날 새벽, 자재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시각에
나는 헛간에서 도끼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며칠 전부터 망가져 있었고,
다음 날 작업에 써야 해서
혼자 조용히 수리하고 있었죠.
거기서 나를 본 사람도 있습니다.
요제프 아저씨가 등불을 빌려줬고,
내가 헛간을 나서는 것도 봤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요제프 아저씨를 쳐다봤다.
늘 말이 적고, 구부정한 어깨와 갈라진 손등으로
세월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미안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면 충분했다.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흔들렸고,
내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공기가 감돌았다.
그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급히 목소리를 터뜨렸다.
“자… 자재실은 어제 하츠 네가 들어갔잖아!”
이미 요제프 아저씨가 내 말을 긍정했기에
더는 나를 몰아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재빨리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속닥이며 내게 불만을 품던 이들에겐,
하츠의 이름을 내세우는 게
자신들의 잘못과 침묵을 덮을 가장 손쉬운 기회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게 불리할 땐 침묵하다가,
흐름이 바뀌자 달려드는 무리들.
썩은 인간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었다.
명분과 힘, 그것뿐이었다.
나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겁먹은 하츠의 얼굴은
나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멱살을 잡아 벽에 내리치고,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쓰러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숨이 거칠게 터져 나오며,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광대뼈에, 턱에, 이마에, 손끝이 부딪칠 때마다
묵직한 울림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주변의 숨죽인 기척이 들렸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는다.
감히 누가 나를 말리겠는가.
오히려 맞부딪히는 감각이 내 안 깊숙한 곳을 두드렸다.
“하아… 하아…”
나는 마치 오래 묶여 있던 족쇄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그는 바닥에 축 늘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주변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잠깐의 쾌감. 그리고 싸늘한 침묵.
그 순간 알았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실이 아니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이상 세상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변했다.
쉬운 일은 내가 먼저 차지했고,
골치 아픈 일은 슬쩍 남에게 넘겼다.
실수는 티 나지 않게 덮었고,
비열한 농담에도 웃으며 동조했다.
관리자의 눈에는 성실한 인부,
동료들의 눈에는 만만치 않은 녀석.
이제는 누구도 나를
어린 꼬마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힘을 되찾았다.
비로소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몸으로 깨달았다.
그래, 이거다.
그 순간, 불현듯 한 얼굴이 떠올랐다.
밤거리에서 마주쳤던 소년.
악마인지 신인지 모를,
진중하면서도 모호한 눈빛.
데미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