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일만 할 수 있는 특권

by 지라르


예전부터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벤노’라고 불렸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헬멧도 쓰지 않은 채로
공구함을 어깨에 걸치고 들어온 모습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군복 같은 낡은 셔츠.

셔츠로 가릴 수 없는 튼튼한 굴곡.
햇볕에 바싹 타버린 피부.


나를 포함해서 다른 인부들도
그에게 쉽게 말을 걸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그의 강인한 팔뚝과 넓은 어깨 때문만은 아니다.


벤노의 눈빛은 깊은 주름 속에 숨어 있었고,
마치 세상을 오래전부터 꿰뚫어 본 듯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두툼한 손바닥은 굳은살로 거칠어 보였지만,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필요할 때 한마디 던졌다.


그렇지만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묵직하게만 보이던 얼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농담은 현장의 공기를 풀어주었다.


그가 현장에 들어서면 공기도 달라진다.

긴장감이 돌면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번졌다.


진중한 사람이면서 산뜻했다.


나는 점점 벤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벤노가 나와 같은 구역에 배정된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함께 일을 했다.


한 번은 내가 무거운 자재에 휘청거리자,
그가 말없이 한쪽 끝을 들어 올려 주었다.


“고맙습니다.”
“별말을.”


그게 우리가 나눈 첫 대화였다.


대화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나는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일을 이어갔다.


며칠 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벤노를 보았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고,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벤노는 눈을 흘기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여기 왜 왔겠냐. 먹고살려고 왔지.

가진 게 몸뚱이뿐이니까.”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어려 보이는데, 왜 여기서 일하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일하면 쎄 보이잖아요.”


벤노는 호탕하게 웃었다.


“넌 얼굴만 봐도 쎄 보여.

서른은 돼 보였는데,

네 나이 듣고 놀랬다.

누가 너를 10대라고 생각하겠니?”


“장난치지 마세요.”
“장난은 네가 먼저였지.

누가 쎄 보이려고 여기서 일하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먹고살려고 왔죠.”
“그 나이에 벌써 이걸 하는 걸 보니

부모 없나 보네?”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있긴 한데…

어릴 때 하도 많이 때려서 나왔어요.”


벤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연기와 함께 말을 했다.


“너도 참... 기구하구먼.

하긴 그 얼굴에 사연 없으면 억울하지”


나는 피식 웃었다.


못생긴 얼굴이라도

약하게 보이는 못생김보다

강하게 보이는 못생김이 낫다고 생각했다.


난 내가 생각해도 명백히 후자다.


그렇지만 벤노의 저 말을 들으니

약간 씁쓸해졌다가 웃음이 나오니까


못난 나를 유쾌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큰 불편 없이 성숙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도 질 수 없다


"벤노 아저씨는 감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사람 같아요"


.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같이 일하게 되었다.
말 대신 손짓이나 눈빛으로도 충분히 통했다.


벤노는 내가 특별히 묻지 않는 한

자기 얘기를 늘어놓지 않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말이 없어도 정이 쌓였고,
서로의 호흡이 점점 맞아갔다.


그를 동경해서일까.

그와 친해져서일까.


한편으로는 벤노 앞에서

내 약은 짓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약해 보이는 어른들에게 슬쩍 일을 미룬다든가,
눈치를 보며 꾀를 부리는 그런 모습 말이다.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정직하게 일했다.


무겁더라도 들었고,

귀찮더라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없는 곳에서는 달랐다.


다시 요령을 피우고,

무서운 눈으로 남을 시킨다.


나는 이미 당한 것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속임수에 걸려 손해를 보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힘 있는 자들에게 당해 왔다.


그런 마음이 보상심리인지

원래부터 나는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 생각을 직면하기에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별거 아닌 일로
곧잘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잊어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벤노가 그런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줄은.


.


“요즘 일은 할만하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힘들죠.”

“안 힘들어 보이던데?”

“네?”


“어린놈이 아주 약게 하던데.”


이 사람에게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려 했으나

이미 다 아는 깊은 눈이었다.


나는 웃으며 받아쳤다.


“효율적으로 하는 거예요. 머리 써야죠.”
“너는 머리를 쓴 게 아니라 사람을 쓴 거지.”
“사람을 쓰는 게 잘못인가요?”
“사람을 쓰는 게 잘못이라고는 안 했다.

부당하게 이용하면서 보상은 주지 않으니 문제지.
너는 네 편의만 위해 사람을 쓰면서,

그걸 효율이라 부른다는 게 문제야.”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벤노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놈이 어려서부터 잘못된 걸 배웠군.
뭐… 이런 세상에서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제가 그러지 않으면 당해요.

이미 몇 번 당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세상이 잘못되면 잘못 배울 수 있다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그러니 어린 네가… 물론 얼굴은 안 어리지만,

아무튼, 그런 약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겠지.

세상이 밝으면 옳은 일만 하며 살기는 쉬워.

그래서 나는 화초 속에서만 살아온 이들이

도덕이니 종교니 말하면 구역질이 나거든"


"맞아요! 저도 이렇게 사는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학교에서도 반 애들도 그렇고 선생들도 그렇고

자기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나를 욕했는지!

위선적이죠."


나는 무언가 폭발한 것 같았다.

내심 그동안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얼굴이 빨개진 듯 달아올랐다.


벤노는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너에게 욕해도 되겠지?"


"에?"


"네가 나보고 사연 많아 보이는 얼굴이라며

적어도 네가 봤을 때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잖아"


이 쫌생이 놈.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가


"그... 그건..."


벤노는 당황한 나를 보고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저를 욕하고 싶으세요? 놀리고 싶은 건가요?"

"둘 다 하는 중이란다."

"그게 무슨..."

"너는 네가 잘못한 줄 알면서

세상이 잘못되었다 말하고 있잖아

나는 그게 웃겨."


나는 벤노와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얼굴이 더 빨개지는 모습을 통해

내 마음이 들킬까 봐 겁이 났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게요."


.


그동안 나만큼은 벤노에게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듯한,
무심하면서도 깊은 그의 눈을 바라볼 때면
나만은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의 눈에는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씁쓸해졌다.


길거리에 아이들 몇이 모여 있었다.

조그만 녀석 하나가 쓰러져있고,

옆에 있던 아이들이 낄낄대며 발로 툭툭 찼다.


나는 그 광경을 멈춰 서서 지켜봤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 웃고 있는 애들을

한 대씩 패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솟구쳤다.


저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넘어져 가만히 당하고 있는 애까지

패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화나게 만든 것일까?

쓰러진 아이를 짓밟는 모습이 나였기 때문에?


당하고 있는 그 애가

어리석고 나약해 보였기 때문에?


그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이

어릴 적 나였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발걸음을 다시 돌리고,

더 빠르게 걸었다.


"왜 저 애들은 갑자기 내 눈에 띄는 거야"


쟤들만 없었어도,

나는 오늘 평온했을 거야.












“맞아요… 저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학교에서도, 반 애들도, 선생들도…
다들 깨끗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욕만 했어요.
그 잘난 깨끗한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오는 것부터 위선이잖아요!”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같이 일하게 되었고,

서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말 대신 손짓이나 눈빛으로 충분히 전달되었다.

벤노는 내가 특별히 뭘 묻지 않으면

굳이 자기 얘기를 늘어놓지 않았고,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요즘 일은 할만하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힘들죠."


벤노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안 힘들어 보이던데?"

"네?"

"일은 주변 사람들 눈치 주면서 아주 약게 하던데."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고요. 머리 써야죠."

"너는 머리를 쓴 게 아니라 사람을 쓴 거야."

"사람을 쓰는 게 잘못된 건가요?"

"그게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부당하게 사람을 이용하고

합당한 것을 주지 않으니 문제지.

그런데 너는 너의 편의를 위해서만

사람을 이용하고,

그걸 효율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벤노는 그런 나를 보고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린놈이 어릴 때부터 잘못된 걸 배웠군.

뭐... 물론 이런 세상에 살면 그럴 수 있긴 해."

"하지만 제가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당해요.

이미 몇 번 당했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내가 이런 세상에 살면

잘못된 걸 배울 수 있다고 했잖아?"

"..."

"그러니 어린 네가...

물론 얼굴은 안 어리지만,

아무튼, 그런 약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겠지.

세상이 밝으면 옳은 일만 하고도 살 수 있어.

그래서 나는 화초 속에서만 살아온 이들이

도덕이니 종교니 말하면 구역질이 나거든"

"맞아요! 저도 이렇게 사는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학교에서도 반 애들도 그렇고

선생들도 그렇고

자기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나를 욕했는지!

그 잘나신 깨끗한 입에서

욕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 위선적이죠."


나는 무언가 폭발한 것 같았다.

내심 그동안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얼굴이 빨개진 듯 달아올랐다.

벤노는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럼 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니까

너에게 욕해도 되겠지?"

"에?"


벤노는 당황한 나를 보고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나는 기분이 나빠진 것을 드러냈다.


"저를 욕하고 싶으세요? 놀리고 싶은 건가요?"

"둘 다 하는 중이란다."

"그게 무슨..."

"너는 네가 잘못한 줄 알면서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어.

네가 잘못한 거는 네가 잘못한 거고,

세상이 못된 건 세상이 못된 거란다.

나쁜 세상이라고 해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착해지는 게 아니란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가볼래요."


나는 벤노와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얼굴이 더 빨개지는 모습을 통해

내 마음이 들킬까 봐 겁이 났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거리에 아이들 몇이 모여 있었다.

조그만 녀석 하나가 발에 걸려 넘어지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낄낄대며 발로 툭툭 찼다.

나는 그 광경을 멈춰 서서 지켜봤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 웃고 있는 애들을

한 대씩 패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솟구쳤다.


저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넘어져 가만히 당하고 있는 애까지

패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화나게 만든 것일까?

누군가를 짓밟는 모습이 나였기 때문에?

아니면, 당하고 있는 그 애가 나였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발걸음을 다시 돌리고,

더 빠르게 걸었다.


"왜 저 애들은 갑자기 내 눈에 띄는 거야"


쟤들만 없었어도,

나는 오늘 평온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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