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탕비실>
<탕비실>을 읽고 왠지모를 부끄러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얼음’이 직장 동료들의 얼음을 얼려 준 단순한 선의는 동료들에겐 부담스런 민폐였고, 심지어 빌런으로 지목되고 만다. 그 장면을 읽는 순간, 나 자신은 세심한 배려라 생각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겐 과도한 관심으로 느껴졌을 순간은 없는지 빠르게 되뇌어봤다. 그동안 센스있는 나, 당연히 고마워할 거라 믿었던 나의 친절이 날 진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렇게 탕비실은 나의 믿음을 무너뜨리며, 내가 간과한 인간관계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주인공 얼음은 직장에서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빌런’으로 몰린다. 리얼리티 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얼음’이 얼음 틀에 음료를 얼리는 사소한 행동으로 빌런으로 지목되는 장면을 묘사한다. 맞춤형 배려는 동료들에겐 부담스런 관심이었고, 결국 그가 오해받는 원인이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했던 행동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함을 주는 상황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탕비실의 이 장면은 내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방식대로 호의를 베푼다. 얼음의 경험은, 때로는 그 선의가 왜곡되고 오해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에서의 배려가 반드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종종 잊는다.
탕비실의 리얼리티 쇼 형식은 인간관계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리얼리티 쇼에서는 각 참가자가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의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행동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판단한다. 이는 실제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상대방의 행동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타인의 행동을 해석하지만, 그 해석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소설에서 얼음이 단순히 얼음 틀을 얼리는 행위가 민폐로 여겨졌듯이, 우리도 때로는 타인의 작은 행동을 오해하고 과장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리얼리티 쇼의 경쟁적이고 의심 가득한 분위기는 인간관계에서의 불신과 오해를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얼음은 자신이 왜 빌런으로 몰렸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종 우리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내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내가 의도했던 선의가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탕비실은 이처럼 타인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관계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리얼리티 쇼의 형식으로 날카롭게 보여준다.
얼음이 느낀 혼란은 내가 느낀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판단하고, 그들이 나의 행동을 나와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타인이 처한 환경과 그들의 감정 상태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내 행동을 해석할 것이라고 너무 쉽게 가정했다.
얼음은 자신이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타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과 배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지만, 그 시각이 타인에게도 동일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 역시 그러한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앞으로 타인의 시선에서 나의 행동을 재평가하며, 그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다가가야 하려나. 한편으로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 그또한 매력이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