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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조각을 불러모아서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 휴가』

by 두부먹는호랑이


『할머니의 여름휴가』안녕달 그림책, 창비


여름휴가 계획 있으세요? 저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여름은 좋아하지만 가만 서 있기만 해도 얼굴이 벌겋게 익고 목과 등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에 맞설 용기가 나질 않아서요.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한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에 떠나는 늦여름휴가도 맛이 조크등요.


아, 그런데 칠말팔초가 막상 닥치면 나 빼고 다 여름 놀이를 간 듯 묘한 소외감이 듭니다. 아 이 서운한 기분은 뭐지? 그렇다고 이 더운 여름에 무턱대고 떠날 순 없다 하는 저와 같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니, 우리 집 안에 바다를 불러오는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 휴가입니다. 』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계신 새하얀 할머니가 입을 헤 벌리고 선풍기 바람을 쐬고 계십니다. 무지 더운 날인가 봐요. 문득 할머니 댁에 바다에 다녀와 까맣게 탄 며느리와 손자가 놀러 옵니다. 힘들어서 바다에 못 가신다는 할머니에게 손자는 바닷소리가 담긴 소라껍데기를 주고 곧 떠나요. 여기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소라껍데기를 받은 할머니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은 채 바다를 다녀와요. 강아지, 갈매기와 수박도 나눠 먹고, 일광욕도 하고, 손주가 다녀온 기념품 샵도 다녀오지요! 할머니의 원피스도 그렇고, 수영복도 너무 귀엽지 않나요? 몸이 불편하고 힘든 할머니는 온데간데 없고 여름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할머니만 계십니다. 이 책엔 할머니의 거실 풍경이 여러 번 나와요. 처음, 중간, 끝. 다른 이들의 바닷가 풍경을 티비로 바라보며 쓸쓸하고 고요해 보이던 거실은 이제 달라 뵙니다. 바닷가에 다녀와 까맣게 탄 할머니가 앉은 거실은 시끌벅적하고 분주하고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까지 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는 정말 소라 속 바닷가를 다녀오신 걸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봐요. 손자가 가져온 소라껍데기 속 바닷소리가 할머니 기억 속 바닷가를 꺼내왔다고요. 사실 할머니는 빨간 다라이에서 강아지와 목욕을 했을 뿐인지도 몰라요. 시원한 물을 받아 몸을 담그며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를, 그때 쬐었던 햇빛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고요. 할머니 속에 저장된 시원한 바닷물과 따갑게 내리쬐던 일광욕의 기억을 선명하게 꺼내 상상하며 즐기는 거죠.(시원한 바닷마람을 느끼는 할머니의 포즈와 마지막 장면의 선풍기 바람을 쐬는 할머니의 포즈가 꼭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유교걸로서 해수욕장에서도 입을 엄두를 못 내고 박아두었던 파격적인 수영복을 꺼내 입고. 샤워기 냉수 아래에서 여름을 보내볼 생각입니다. 이곳이 계곡이다- 하고요. 마침 샤워기에 고압 필터가 장착되어 있으니 계곡 느낌이 팍팍 날 것 같아요. 수경도 써야겠습니다. 그리고 대충 물을 털고 나와 삼겹살 구워 비빔면에 돌돌 말아 한 입 밀어 넣으면 바로 그곳이 무릉도원 아니겠습니까!



같이 읽어요!

1.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방법 또 뭐가 있을까?

1) 창가에 의자를 펴 놓고 일광욕을 하며 가벼운 여름 에세이(여름이 긴 것은 수박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 쩡찌, 세미콜론;)를 읽는다.

2) 친구 연인 가족을 불러 베란다에서 물총 놀이를 한다.(나의 유치함도 받아줄 수 있는 절친한 관계 요망)

3) 양동이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미리 적셔 냉동고에 얼려둔 수건을 목에 감고, 얼음 동동 미숫가루나 수박을 먹으며 여름 노래를 듣는다.

4) 또다른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용!


2. 그림책 샅샅이 읽기

1) 할머니의 선풍기가 답답스럽게 돌다가, 바다에 다녀온 후 집을 가득 채울 정도로 시원하게 부는 이유는?

2) 할머니의 피부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3) 할머니가 실제로 소라 속 바닷가를 다녀왔다고 믿게 하는 증거들은 무엇이 있을까?

4) 책 곳곳에 숨겨진 꽃게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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