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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Dec 12. 2018

프롤로그

일단 재밌게 써야겠지만......

'필리버스터'는 웹진 '시선과 공간'에 매주 자유 주제로 기고했던 에세이입니다. 이따금 제가 쓴 글들을 한 곳에 모아둘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브런치 작가로 선정됐습니다. 현재 사이트는 비공개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를 빌미로 그동안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업로드합니다. 필자의 판단하에 몇몇 글은 올리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렇게 밝혀 봤자 읽어주는 이는 열 손가락 안에 꼽겠지만, 굳이 밝히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태생적으로. 게으른 성격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내가 기질적으로 게으른 성격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포부 없이 시작했다가는 “허허, 이번 주는 몸이 좀 안 좋아서…” “이번 주는 새로 산 연필의 필기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하는 133가지 준비된 변명을 거창히 적고 픽,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워킹데드나. 정주행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코 이런 연유 때문만은 아니었다(부디 믿어주세요).


18살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지니고 나름 지금까지 진지하게(?) 써내려 오고 있는데, 30킬로 바벨을 드는. 것 마냥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바벨을 잘 들기 위해선 헬스장을 가야 한다. 그에 앞서, 바벨을 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매일 헬스장에 출석하는 일이다. 이 말이 깊게 체감되지 않는다면 내년 1월과 6월 만은 꼭 헬스장에 들러보시길. 연초(年初)와 연중(年中)에 헬스장의 전경을 마주한다면, 필자가 적어낸 문장이 척수를 따라 깊게 체감됨은 물론이요, 헬스장이라는 개인 사업체가 어떻게 채무를 상환하며, 윤택하게 자본주의가 돌아가는지에 대한 순리까지 깨닫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자꾸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런 까닭에서 무거운 바벨을 가뿐히 들었다 내리는 헬스장 단골 할아버지의 꾸준함을 롤모델 삼아, 헬스장을 가ㄱ… 아니,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꾸준히 말이다.

아 참, 매주 올라갈 칼럼의 제목은 ‘필리버스터(feelibuster)’로 정했다. 제목을 짓는 데에만 밥 9끼 에너지를. 전부 소비한 것 같다. 다들 아시겠지만 필리버스터란 의회에서 왕왕 쓰이는 용어로써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보장된 소수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뜻하고 있다. 가령 163명으로 의원수가 더 많은 A당으로부터 “어벤저스가 너무 재미있어 우리 자식들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마약으로 지정하세요!”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선출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과반수 이상인 A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B와 C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한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여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호오, 그렇다면 정치 관련된 칼럼을 매주 올리는 겁니까?’하고 생각하면 또 난처해진다. 유시민 선생님처럼 수려한 필력을 지니지 못했거니와 그만한 지식도 없는 나한테 과분한 것을 바라는 것 같다. “그럼 대체 왜 필리버스터라는 거야?!”하며 노여워하는 모습이 훤하다. 지금 얘기할게요. 워워, 진정하세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저 소소히 흘러가는 우리네 주변 이야기다. 내가 느낀 것들을 그저 묵묵히 적어 내려가는 것. 아니 어쩌면 모두가 느꼈지만 구태여 적지 않은 사고들을 끄집어 문장의 형태로 남긴다, 가 더 부합할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어떠한 교훈이나 심오한 의미의 잠식 같은 건 없다. 거기에는 작은 소견(所見)과 망상(妄想)만이 조금 덧대어질 뿐이다.


세상에는 남녀의 평등과 빈부격차 문제,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명확한 존재 이유를 지니고 적힌다. 가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연필이 있으면 볼펜이 있고, 고구마가 있으면 감자가 있듯이, 어딘가에는 중력이 틀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안티테제(Antithese)가 필수 불가결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해방과 자유, 사랑을 울부짖지 않는 스낵 워드(Snack Word)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올라오게 될 무수한 글들 또한 곧이곧대로 해석해주면 감사하겠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필리버스터의 ‘필’은 느낀걸(feel), 적는다(필筆), 라는 의미쯤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를 통한 나의 시선인 것이다. “흠, 화자는 헬스장과 바벨을 이용하여 기득권층이 몸을 부풀리는 데 그저 소모품 적으로 이용되는 우리 서민들의 모습을, 민주주의 사회의 내재해 있는 섭리적인 약육강식 현상에 대해서 메타포 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군” 같은 해석은 부디 삼가 주시길 바란다. 헬스장은 헬스장이고, 바벨은 바벨이다. 그게 전부다. 제발.


42KM 마라톤 풀코스를 가로지르는 익명의 마라토너처럼, 분명한 목적을 지닌 글을 읽으면, 심히 많은 고찰에 잠긴다. 무언가를 직시하는 많은 목소리들이 더욱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투쟁의 글들로만 놓인다면 어쩐지 조금은 음울해지지 않을까. 해서 나는 칼럼 제목이 지니는 사족을 구차하게 설명하며, 특정한 글의 독과점을 막고자 오랫동안 묵묵히 외치고자 한다. 의회에서 가장 작지만 거대한 목소리, 필리버스터처럼! 그저 가볍고, 즐겁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단 재밌게 써야겠지만……


한국과 달리 미국의 필리버스터는 주제에 대한 규제가 없어, 소설이나 동화를 읽는 둥 흐름의 중심이 샛길로 빠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그런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아이고, 또 글이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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