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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Dec 23. 2018

남자의 로망

당신은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으신지?

일반화시키기는 뭣하지만 남자의 가슴속에는 한없이 들끓는 기포처럼 로망을 지니고 있다. 아, 물론 여자도 지니고 있다. 삶의 이유를 소실해버린 서울역 노숙자도 지니고 있고, 물린 모기 자국처럼 통통한 우리 집 개 쩐이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맥락의 일관성으로 인해, 이 글을 쓰고, 그리고 읽고 있는 나와 당신도 로망을 지니고 있다(아니라면 할 말이 없군요. 죄송).


특별하진 않지만, 나의 오랜 로망은 근사한 서재를 갖는 것이었다. “뭐야, 지구 정복이라도 외칠 것처럼 늘어놓더니 시시하잖아.”하신다면, 뭐 죄송합니다. 삶의 행복이란 생각보다 사소한 일에서 틈입되는 것들 투성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히 적고 싶지만, 생각보다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여가 생활을 차츰 식민화시키고 있는 요즘. 그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본 우리 정부는 서적들의 영예와 출판 업계에 실추를 막고자 도서정가제*라는 걸 실시했다. 책들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만 원 내외. 비싸면 수십만 원까지도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스무 살 대학생의 용돈과 알바비로 빼곡히 사 모은다는 건 어지간히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은 어쩐지 맛이 살지 않는다. 계약하고 만나는 연인 같은 기분이다. 희열은 책을 읽고, 만지고, 표시하며 소유해버리는 데에서 온다. 이렇게 말하니 너무 변태 같은걸요).


자, 어떻게 책을 모았다고 하자. 이제 그에 걸맞은 근사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용 가능할) 책장이 필요할 것이다. 10평. 아니. 5평이라도 좋으니 책장을 삼 면으로 들인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갈 수백수천 권의 책들을 거뜬히 버텨줄 6단 책장을 알아본다. 한 면당 약 50만 원 정도가 소비된다. 이에 다시 곱하기 3을 해보니……, 매우 침울해진다.


이따금 근사한 서재 속에 둘러싸이는 공상에 빠져든다. 로망이니까. 책들이 가득하다 못해 이곳저곳에 흘러넘치는. 광대한 책들 사이에 파묻혀 나조차 그만 활자가 돼버릴 수 있는 서재.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뚫어져라 인터넷 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초록 띠를 두른 검색창은 내게 “그렇게 빤히 바라보지만 말고 어서 ‘서재’라고 검색해보시라구요! 찡긋.”하며 관능적인 커서를 깜빡인다. 마치 윙크처럼. 그러면 나는 또 ‘이거 어쩔 수 없겠는걸.’하며 넘어가 주는 척 키보드를 동작하고 있는 것이다. 타닥타닥.


세상에는 참 각양각색의 서재들이 있다. 쭉 훑어보다 말고 책상 우측에 있는 추레한 나의 책장을 바라본다. 어쩐지 머쓱한 아이처럼 꾀죄죄한 미소로 싱긋, 하며 표정을 내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절레절레, 하며 다시 모니터 속으로 모든 신경이 빨려 들어가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검색을 하다 알게 된 건데,―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서재라는 키워드를 살피다 보면 문인들의 사진을 자주 접하게 된다. 12월 중순, 명동 거리에서의 구세군 냄비처럼.


소설가든 평론가든, 여러 문인들을 담고 있는 사진의 뒤편에는 매끈하게 서재가 들어서 있다. 어느 숙명처럼 존재한다. 멋들어진 서재를 가져야만 훌륭한 문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문인들은 하나같이 서재를 소유하고, 가득한 소유물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이 또한 아니라면 할 말이 없군요. 다시 한번 죄송). 문단에 잠식하는 하나의 관례같이 느껴진다. 혹은 문인으로 등단하면 수여받는 ‘서재 무늬 벽지’인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문인들 사진을 볼 때마다 여간 곤란해지는 게 아니다. “어이 최 군. 아니 아니, 최 작가! 신인상을 축하하네! 난 자네의 시답잖은 농담이 언젠가는 먹힐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상금 오천만 원은 모레 중으로 통장에 입금될 걸세! 뒤풀이 오는 거 잊지 말고. 아아, 그리고 서재 무늬 벽지는 사무실 왼편에 있다네. 원하는 무늬로 꼭 챙겨가는 것도 잊지 말게!” 하는 장면으로 머릿속은 가득 차 버리고 말 테니까. 아아. 이게 다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로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폐부 깊숙한 곳부터 우리를 살아지도록 한다. 이따금 그렇다. 방 안에서 혹은 신호등을 기다리며 펼쳐지는 잠깐의 세상이다. 이뤄질 수 없다고 한들 개의치 않는다. 생각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저 로망일 뿐인데 뭘. 학창 시절 짝사랑하던 아이와 이루어지는 로망. 이제는 볼 수 없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로망. 집에 들어섰는데 짠, 하며 다이손 청소기를 선물 받는 로망(이건 요즘 새로 생긴 로망입니다 하하). 슬쩍 빠져들었다가, 킥킥거리곤 다시 2018년 12월의 한국으로 돌아오면 될 뿐이다. 그게 전부다. 슬쩍 행복해지기도 하며.


그래서 로망이라는 것은 어쩐지 피자 한 조각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유약한 모서리처럼 소박한 로망도 있고, 널찍한 도우를 닮아 크고 대범한 로망도 있다. 그 먹음직스러운 삼각형 속에 실처럼 가늘고 응집돼있는 촘촘한 꿈과 공상이 있다. 뭐, 어떻게 됐든 세상에는 피자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로망이 존재하지 않나 싶다. 로망이 사물화 된다면 지구의 면적으로는 견디지 못하고 우주로 범람해버릴 것이다.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로망이 사물화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범한 나는 매우 난처해지고 만다. 그나저나 로망도 피자처럼 전화기를 들어서 주문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저… 오늘은 김태리와 데이트하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아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요. 그 로망은 이미 판매됐습니다. 손님.” 맙소사. 나는 로망한테 마저 차이는 인생이었던가.


(로망이라는 말을 자꾸 언급하니, 입안이 둥글어지는 기분이 든다. 로망 로망…)


*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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